한국일보

칼럼/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2006-04-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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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16일은 부활절이다. 기독교에서의 부활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제자들에게 보임으로 시작된다. 인간의 상식과 과학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예수의 부활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이 예수의 부활을 빼버린다
면 기독교는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나타난 부활로 본다. 역사적 부활이란 실제 일어난 상황이란 뜻이다. 누가 만들었거나 지어낸 소설 같은 부활이 아니란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돌무덤에 장사되었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돌무덤에서 부활했다. 부활 후 제자들에
게 나타나 보여줌으로 다시 산 예수를 본 그 제자들의 증언을 사실로 본다는 것이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는 예수의 부활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죽은 후 다시 살아나 제자들을 만나는 장면도 있고 승천하는 장면도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모두 달아났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한 모습을 보고 모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예수를 전도하기 시작한
것이 초대교회의 시작이다.
부활이 가지고 있는 큰 의미 중 하나는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데 있다. 예수의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죽음 전의 십자가의 고통을 대 전제로 한다. 즉, 예수의 부활은 십자가상의 고통을 지나 죽음에 이르고 그 다음 다시 살아나는 부활로 전개됨을 볼 수 있다.
생에의 역경은 십자가와 같다. 역경을 이겨낸 새롭게 변화된 상태는 부활과 같을 수도 있다. 기독교가 십자가와 부활을 신앙의 중심에 두는 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가진 또 다른 해석에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난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예수는 인류가 가
진 원죄를 모두 짊어지고 처형당했고 돌무덤에 들어 간 후 다시 살아남으로 하나님께 대속되어 모든 인류가 예수만 믿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근거를 갖게 된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전도한다. 그리고 “죽은 후 예수처럼 다시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다”고도 전도한다. 이 신앙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로부터 현재까지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도
를 하다가 순교를 했고 또 하고 있다.
부활이 없다면 죽으면 그만이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갖고 순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대교회 예수의 제자들은 거의 순교를 했다. 순교를 하면서도 그들은 예수의 다시 살아남을 증거 했다. 기꺼이 순교를 받아들이면서도 예수를 전파한 그들에게는 부활은 지상 최대의 용기가 아닐
수 없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세상에 따를 무엇이 있겠는가. 부활이란, 죽음이 생의 종말이 아님을 뜻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를 전파함은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음을 기독교인들은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이다. 상식으로나 과학으로 믿기지 않는 부활을 신앙으로 믿고 믿
음으로 받아들이기에 기독교정신은 지금도 온 세상에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신앙이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믿음이란 신앙을 토대로 자라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초대 기독교도의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원력을 제공했다. 부활은 곧 그들에게 희망이요
소망이었다. “예수 믿음으로 부활에 동참하고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영생함”을 그들은 믿었다.
부활절이 되면 교회에서는 달걀을 나누어 준다. 달걀이 가진 의미는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온다는 데 있다. 알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새롭게 변화된 생의 모습은 부활의 의미를 잘 나타내 준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 되어 푸른 하늘을 나는 것도 부활의 의미를 가진다.

죽음 같은 흑암에서 새 생명이 탄생됨을 부활의 의미는 갖고 있다.
이처럼 부활의 또 다른 의미는 변화를 통한 새로운 생과 삶을 뜻하기도 한다. 세상엔 살아 있으면서도 죽음 같은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정신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도 많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같은 역경을 통과해 다시 희망을 갖고 변화되는 삶도 부활의 또 다른 장면일
수 있다. 소망이 끊긴 자에게 소망이 연결 될 때도 부활일 수 있다. 관계 회복도 부활일 수 있다. 죽음처럼 보던 세상을 아름답게 새로이 보는 것도 부활일 수 있다. 부활절을 맞아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과 세상의 변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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