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값진 성찰의 기회

2006-04-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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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경우는 성난 듯 거칠고 세찬 큰 물결같은 대중의 힘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때로는 한 사람의 조용한 움직임이 지금까지의 갇힌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물꼬를 트기도 한다. 전자로는 몇 십만, 몇 백만의 시위를 생각할 수 있고, 후자로는 마틴 루터 킹목사의 민권운동으로 이어지는 흑인 로사 팍스여사가 조용히 부싯돌에 불을 당긴 결과를 생각하게 한다.

4월 초순, 미 프로풋볼 ‘수퍼보울’ MVP 하인스 워드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사회적인 섭섭함을 주었던 한국내 분위기를 주시하면서 모처럼 고향을 방문한 그의 여행이 즐겁기를 바랬다. 열정적인 한국의 거국적인 관심과 환대는 그가 처음에 원했던 개인적인 여정을 느낄 시간은 부족하였겠지만, 그의 마음을 채워주는 동족 사랑을 느꼈을 줄 안다.워드가 한국 사회의 지지에 감격해 하면서 ‘어머니는 내가 MVP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인들이 정말로 나를 받아들인 것인지 아직도 미심쩍어 한다’고 전하는 펄벅 인터내셔널의 기사가 흥미롭다. 한국이 워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들의 성공을 이룩한 한국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하면서 그동안의 미안함을 씻으려는 표현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렇게 성공하였을까’라는 의문은 우리가 풀어야 할 몫이다.


하인스 워드는 한국에 큰 선물을 남겼다. 한국 사회에 값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동안 마음과 손이 미치지 못한 혼혈아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 기회를 만들었다. 현재 3만5,000명에 이른다는 혼혈아들은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사회의 냉랭한 눈빛에 주눅이 들고, 취업에 차별 당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은 전연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워드를 보면서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교과서 내용을 2007년부터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개정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학 입학 할당제’ ‘국제결혼 가정에 대한 차별 금지법’ ‘혼혈인 및 혼혈인 가족 지원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인들은 혼혈인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이다. 경제적인 세계화에는 민감하지만, 그동안 한국 내의 그늘진 곳에 사는 혼혈인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던 점을 반성하게 된 것이다.워드의 또 하나의 선물은 ‘효(孝)’사상의 본보기를 보인 점이다. 그는 미국에서 기자회견 시 ‘왜 혼자 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머니와 단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이번 한국 방문도 어머니를 위한 계획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대하는 예절·보살핌·눈길은 진실한 사랑으로 보인다. 그의 성장기에 어떻게 마음을 썼기에 이런 아들을 둘 수 있었을까. 워드는 언젠가 이런 뜻의 말을 하였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행동을 삼
가게 되었다’고.한국문화의 중핵에 ‘효’사상이 있다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효’의 마음씨와 모양새도 변질하였다.

미국에서 일류 명문대학을 나온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일차적 아메리칸 드림은 달성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느끼는 일말의 서글픔은 미국식으로 표현하는 자녀들의 마음씨일 것이다. 한국내에서도 부모 섬기는 모습이 달라진 듯하다. 그래서 워드의 어머니를 섬기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하인스 워드가 방문한 한국은 정성껏 그를 맞았다. 그러나 워드가 한국에 남긴 선물은 본질적인 면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의 방향을 돌렸고 ‘효’사상의 롤 모델이 되었다. 워드는 이렇게 값진 교훈을 한국내에만 남겼을까.

우리들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불평하면서 내 자신이 주위 사람들을 차별하는 일이 없을까. 또는 남들이 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만 보이고, 내 자신이 부모를 소홀히 하는 일은 없을까. 워드가 한국 방문시 남긴 교훈들은 미국내 한인사회에도 생각할 문제를 던지고 있다. 그는 조용히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 좋은 방향으로, 옳은 방향으로 바꾸는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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