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교회개혁운동에 대한 어떤 충고들

2006-04-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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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다보면 여러 형태의 충고를 듣게되는데, 그 중에는 오랫동안 새겨들을 가치있는 충고도 있고 그렇지 않은 충고도 있다. 기독교윤리실천(기윤실) 운동과 관련하여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몇몇 교수님들의 충고를 적어본다.
한국의 유명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근무중 이곳 미국 신학대학을 방문중인 분의 충고를 들어보자. “기윤실 운동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교가 교회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기 때문에 교회에 대하여 바른 소리를 외치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신학 교수들이 개혁에 직접 동참하기는 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의 주체는 재정적으로 교회를 받들고 있는 평신도가 되어야합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봉사를 많이 하고 언론 매체를 통하여 좋은 말씀도 하시는 교수님에게 기윤실의 취지를 설명하고 조언을 부탁하였다. 그 분의 말씀을 들어보자. “그래도 교회에서는 교수라고 하면 대우하여 주지 않습니까? 조용히(대우받으면서) 다니면 되지,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합니까?” 너무도 예상치 않았던 답변에 필자는 예의상 의례적인 인사 말만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로 그분의 이름이 신문이나 TV등에 나타날 때마다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평소에 교회 개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미국 신학대학의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은 필자를 연민의 눈길로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안정된 직장에서 편안한 생활을 즐기시지, 골치 아픈 교회개혁운동에 괜히 끼여들어서 사서 고생합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의 성급한 성격이 발끈하여(?) 이렇게 항의하였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멋있게 편히 지낼 수 있었을 터인데 왜 할일 없이 죄많은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의 충고는 분명히 우리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이러한 분들의 충고를 요약하여 보면 편하게 넓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충고이니 필자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충고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교수님들을 만난 후에 기윤실 운동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어떤 교수님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그 분은 정치학자답게, 지식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왜 교회개혁운동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중세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개혁의 성공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봉건군주들 즉 이익 집단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교회개혁운동은 참여해봤자 나올 국물도 없고, 교회개혁운동을 지지해 줄 이익 집단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개혁운동하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인간의 행동 동기는 이익 추구에서 나온다는 가설이 사랑과 희생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에도 잘 들어맞는 슬픈 현상이다.
개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예수님의 일생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의 개혁운동은 수많은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는 십자가상 죽음이었다.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님의 개혁 추구는 실패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지 않았던가? 그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인들은 예수의 개혁운동은 실패로 끝났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님의 개혁이 실패로 끝났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독인으로서 조용히 기도 생활하는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신사 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이 있기에, 광폭한 히틀러를 암살하려한 본 회퍼 목사님이 있기에, 가까이는 한평생을 남을 위하여 봉사하며 살았던 테레사 수녀님이 있기에 기독교가 강한 실천과 생명의 종교가 되지 않았겠는가? 현재의 교회개혁운동이 지지하는 이익 집단이 없어 힘들지라도,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자세로 개혁의 씨앗을 뿌리면 예수님의 생애에서 볼 수 있듯이 언젠가는 그 개혁의 열매를 맺게될 것이다.
(LA기윤실 공동대표)

허 성 규
(칼스테이트 샌버나
디노 회계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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