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집단 문화실조 증후군’

2006-04-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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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씨가 지휘하는 서울 시립교향악단의 ‘찾아가는 시민 음악회’가 화제라고 합니다. 서울시향이 600-800석 수준의 시설이 낙후된 구민회관을 찾아다니고, 대학교의 강당이나 교회 예배당에서 시민들을 위하여 연주회를 개최했습니다. 선진국의 교향악단들이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돕기 위해 커뮤니티의 작은 곳으로 찾아다니는 모습을 이제는 조국의 교향악단도 실시하는 가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무슨 공헌이 될 수 있는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어느 대학의 교수가 썼던 글이 커뮤니티의 지도자인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전염병으로 보이는 질병이 번졌습니다. 이 병은 지구상에 전례가 없으며 증상이 대단히 심리적이라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 질병의 환자들은 마음이 조급해지고 쉽게 흥분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특히 남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됩니다. 또한 그들은 장기적인 기억이 손상되고, 장기적인 관점을 갖기 힘들며 참을성이 부족하게 됩니다. 이 질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삶의 정신적인 면을 고려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 부족한 증상을 보입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마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쫓기듯이 생활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며 양보할 줄 모릅니다. 서로를 믿지도 못합니다. 쉽게 흥분하고 참을성이 없어진 사람들은 사소한 말다툼에도 칼을 휘두릅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니 범죄는 갈수록 잔혹해 집니다.
이러한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온 나라의 과학자들이 모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신체검사를 하고 그들이 마시는 물, 음식을 통해 발견될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검사하였으나 소득이 없었습니다.
이때 한사람이 나타나서 괴상한 처방을 내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원,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극장, 도서관을 지금의 5배로 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았으나 별다른 대책이 없던 사람들은 그의 처방을 따라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2년도 채 되지 않아 그 처방의 효험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내린 진단은 ‘집단 문화 실조 증후군’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저에게는 많은 도전을 준 글귀였습니다. 교회에 관련된 회의를 참여해 보면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사람들과 함께 한 회의는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녁이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에 관련된 회의는 밤늦은 시각까지 어김없이 일 중심으로 나아갑니다.
또 다른 커다란 차이는 미국인들 모임에는 모이는 도시의 박물관이나 문화의 현장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넣어서 그 도시의 문화 공간을 접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동부에 있을 때 섬기던 교회 교인들 몇십 명과 함께 다운타운의 콘서트 홀을 찾았습니다. 음악회 후에 저에게 온 한 교회 중직자의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이민 와서 15년만에 처음으로 이런 곳에 왔습니다”
우리 한인 사회의 균형 잡힌 삶을 위해서는 곳곳에 어려운 분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많은 문화행사들이 베풀어졌으면 합니다.


고 태 형 목사
(선한목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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