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넋빠진 민주주의

2006-04-05 (수)
크게 작게
소재섭(브루클린)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기본권인 인권을 갖는다. 일반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상식이 돼버린 이 권리를 얻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선인들이 목숨까지 희생하여 쟁취한 ‘피눈물의 결정체’가 지금 무너지고 있다. 이 땅에서...
도대체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2005년 12월 16일 연방하원에서 센센브레너-피터 킹이 공동 발의한 <국경 안보, 반테러즘 및 반이민제한법(HR 4437)이 통과되었다.
서류미비자 단속 및 추방, 국경장벽 확대 설치 및 감시강화, 고용주의 신분확인 의무, 지역경찰에 단속 권 부여, 밀입국 방조에 대한 조항(관련자 모두 처벌), 한 마디로 ‘반인류적 악법’이다. 이 법안은 의무만 있고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한 서류미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9.11 이후 ‘국가 안보’를 빙자한 반이민 집단의 이민자 단체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영구적인 ‘공격의 신호탄’이다.

기회의 땅인 이곳에서 뛰어난 재능과 실적, 노력과 열정, 의욕이 넘쳐도, 미 역사를 통째로 달달 외워도, 유창한 역사를 줄줄 쏟아내도 ‘영원한 이민자’로 분류된다.중세 신분제의 부활이다. 이는 패역부도한 짓이요, 인권을 탈취하는 것이요, 인종차별이다. 미국 헌법을 뿌리채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도 해야겠다면 민주주의 ‘깃발’을 내리고 하라!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장래의 ‘선택권’마저 빼앗긴다. 그들이 그어논 선 밖으로 못 나간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와 내 아이들을 단속 대상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영원한 이민자로 만들고 있는데 강 건너 불구경 하는가?
만약 지금 우리가 막아주지 않으면 내 아이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우리가 손 놓고 있으면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나도 지금까지 구경꾼으로 있다가 3.27 워싱턴 DC
집회에 ‘청년학교’와 함께 갔다. 많은 어르신들이, 그 중에는 90세 넘은 분도 함께 하셨다. 사비를 털어 뻣뻣한 빵 한조각, 식은 김밥 먹어가며 우리 대신 싸우고 있는 청년학교다. 요즘
할 일은 많아졌는데 살림살이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힘을 보태자” “격려의 전화도 하자”앞으로 남은 2주가 중요하다. 최소한 후손들에게 아무 것도 안 했다는 말만은 듣지 말자. 정의
와 자유의 종은 우리가 치지 않는 한 결코 울리지 않는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