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4월은 잔인한 달

2006-04-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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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4월은 분명 초봄이다. 시샘 바람 다 가시고 진정한 봄의 얼굴, 그 것이 바로 4월이다. 그런데 이 훈훈한 봄에 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도 우울할까? 겨울이 떠난 지가 얼마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4월을 잔인한 달로 본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T. 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4월이 되면 따뜻하다고 하기보다 잔인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 그랬을까? 4월은 따뜻한 봄을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 엉기고 설킨 그 매듭을 한인들은 잘 풀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정이 가정답게 진행이 되지 않을 때에 그 가정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4월이 훈훈한 것이 아니라 잔인하다고 느낄 것이고 상점 문을 겨우내 닫았다가 봄이 돼서 문을 열어 놓았는데도 손님의 왕래가 빈번하지 못할 때 그 상점 주인은 4월이 잔인하다고 느낄 것이다. 또 나이든 노
인들이 이 화창한 봄날에 찾아오는 사람, 방문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길을 걷거나 혼자서 방에 갇혀 있을 때 4월은 차라리 잔인한 달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어두웠던 겨울보다는 환한 봄날에 두고 온 가족들이 더 보고 싶고, 두고 온 가족들이 더 그리워지는 데도 불법체류자라고 하는 신분 때문에 이산가족이 되어야 하는 그 심정이 화창한 4월에는 더욱 더 잔인하다 느낄 것이다. 분단의 장벽 저 너머 두고 온 북의 부모형제들을 보지 못
하는 그 처절한 이산가족의 아픔도 매년 꽃이 활짝 피는 4월이면 더욱 더 잔인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몸이 아파 병석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와 마찬가지일 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4월은 곧 지나간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잔인하고 슬프고 서럽고 고생이 된다 하더라도 그런 것들은 곧 지나게 되어 있다. 인생의 법칙이란 그런 것이다. 설령 지금 몸이 불편하거나 가정이나 사업에 어려움이 있거나 불법체류자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그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수 있다.
보라! 신분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숨어 지내던 불법체류자들이 이제 상원에서의 친 이민법 통과로 머지않아 신분을 감추어야 할 필요가 없는 그런 희망도 갖게 되지 않았는가. 또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경제는 항상 주기적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부동산 경기는 주기가 보통 7년마다 바뀐다. 이렇게 값이 오르고 내리고 하다 보면 장사의 주기도 매년 7년마다 달라진다. 그런 것을 보면 지금까지 약 7년 정도 어려웠으니 앞으로의 경기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봄직 하다.

원래 잔인하다고 하는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바탕이다. 무슨 일을 진땀 흘려가며 잔인하도록 하는 것은 모두 성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일례로 일찍이 우리나라에 4.19가 없었다면 자유, 민주주의 발판을 세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잔인한 달 4월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
이 목숨을 잃었나. 그들이 잔인함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한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것이다.
한인 미주이민역사에도 4.29폭동은 분명히 우리에게 잔인하게 다가왔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소의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사회 환원에 대한 한인들의 의식과 관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듯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도 하나의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다. 한인의 성공적인 이민역사는 그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낸 한인들의 그 엄청난 고통과 시련, 고난과 희생, 그리고 인내와 투지의 산물이다.

잔인함은 오히려 성공으로 몰고 가는 하나의 힘이요, 원동력인 것이다. 한인들의 삶의 역사는 기실 어느 민족보다도 잔인하리 만큼 처절한 시련과 아픔을 극복한 승리의 결정체다. 설사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시시 때대로 우리에게 밀려드는 잔인함을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보람으로 승화시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무리 마음이 시리고 아프더라도 잔인함을 우리는 어떻게든 극복, 가정은 물론, 사업체도, 직장도, 사회도 건강한 기틀 위에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이 4월에 그 숙제를 안고 있다. 겨우내 아픔을 딛고 담장너머 활짝 피어난 노오란 개나리와 라이락, 벚꽃들이 유난히 밝고 화사해 보인다. 잔인함의 결정체는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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