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컴퓨터의 철학

2006-04-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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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20세기 과학기술의 위대한 성과인 컴퓨터, 이의 광범한 응용은 전체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동하여 제2의 산업혁명을 이룩하고 있으며 특히 인터넷의 눈부신 발전은 21세기를 정보시대로 활짝 문을 열어놓고 있다.
여태까지의 과학기술이 사람의 팔, 다리, 눈, 귀의 능력을 확대하여 생산력 발전을 비약시킨 것이라면 1940년대에 나타난 컴퓨터는 사람의 두뇌가 할 일을 유능하게 대신함으로써 인간을 번쇄한 두뇌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있다.

“기억의 저장과 연역적 판단, 운산 등 인간의 두뇌만이 할 수 있는 정신활동, 즉 ‘사유’를 기계가 대신 한다...” - 이것은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철학적 사고를 하도록 계도하고 있다. 워낙 ‘사유’라는 정신활동은 동물, 그 중에서도 고등동물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다.왜 인간만 사유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고도로 조직된 특수한 기관인 인간 두뇌를 사람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도 인간 두뇌의 고유영역인 ‘사유’라는 정신활동을 한다.


컴퓨터는 수만가지의 정보를 기억하며 빠른 속도로 연역, 추리하여 정확한 결론을 내리며 인간보다 수십만배 빠른 속도로 수학 계산을 하며 때로는 인간과 트럼프 게임을 하고 속임수를 쓰면 거기에 대처할 줄도 안다. 심지어 음악 작곡까지 하는 등 사람의 정신활동을 빠짐없이 해
내는 것이다.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인간의 사유에 대한 컴퓨터의 모방은 어디까지나 인간 두뇌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인간 두뇌활동의 작품이 낳은 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컴퓨터의 기억 기능은 사실에 있어서는 인간이 입력기 속에 넣어놓은 대량의 정보이며 컴퓨터의 추리라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 연역에 필요한 논리를 기계에 가르쳐준 것이며, 컴퓨터가 내린 결론이란 인간이 입력한 프로그램과 수치의 논리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기계는 넣지 않는 것은 보낼 수 없다. 인간이 설계하고 제작하고 조종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사유’는 하나 하나 전자 요소의 장치에 의해 실현되며 전자 운동은 물리적 운동형태에 속하며 컴퓨터는 물리적 운동 법칙에 복종할 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운동 형태에 속하는 인간의 사유는 물리적 운동 형태를 포괄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인간의 사유는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습득한 언어(동물에게는 언어가 없다)를 수단으로 하여 속으로 생각하며 자기가 하는 일의 의의를 인식하고 있지만 컴퓨터는 이러저러한 규칙을 따를 뿐, 인간의 사유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컴퓨터의 음악 작곡이란 것도 선택 규칙을 이용하여 음부를 배열해 놓은 것으로 음악전문가들이 들어보면 “흥미는 있으나 예술창작품이라 할만한 것은 못된다”고 한다. 인간이 작곡한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소재를 수집하여 드높은 감정으로 창조한 것
으로 물리학의 법칙에 근거하여 음부를 이어놓은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인간이 발명한 모든 도구는 모두 인체의 연장에 불과하다. 굴착기는 손의 연장이며 차 바퀴는 다리의 연장, 확성기는 입의 연장이라면 컴퓨터는 두뇌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인간 사유에 대한 컴퓨터의 모방은 계속 발전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인간의 ‘사유’를 대체할 수 없다. ‘사유’는 오직 인간 두뇌의 고유 기능이며 컴퓨터는 그의 연장에 불
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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