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부모의 용기있는 결정이 필요한 때

2006-04-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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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2부 차장대우)

최근 우수 명문대학을 중심으로 중·저소득층 가정의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파격적인 학비보조 정책이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 시초는 지난 1998년 프린스턴 대학이 학생들의 학비융자 부채를 무상지원금으로 탕감해준 것이었다. 당시에는 가구당 연소득 4만6,500달러 미만인 학생에게만 적용했으나 대학은 5년 전 부터는 아예 모든 학부 재학생으로 확대 실시해오고 있다.

본격적인 불씨를 당긴 것은 지난 2004년 하버드대학이었다. 소득수준에 따라 부모 부담금을 전액 면제해주거나 할인해주는 정책을 발표하자 이후 최근 2년 동안 예일대학, 브라운대학, 펜실베니아대학 등 명문 아이비리그에서부터 스탠포드대학, MIT 공과대학 등 소위 일류대학들이
앞다투어 학비 전액 면제 또는 무상 보조금 100% 매칭 지원 정책 등을 속속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은 ‘가난해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나라지만 이처럼 공부만 잘한다면 학비부담 0%로 명문대학의 강의실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맞벌이로 아등바등 살기 보다는 차라리 학비 전액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소득기준에 맞춰 수입을 줄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아래 배우자 한쪽이 직장을 포기하고 가사에만 전담키로 했다는 한인들도 실제로 더러 나타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으나 캠퍼스내 사회·소득계층의 다양성 추구를 위한다는 정책의 기본 본질이 퇴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군다나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마치 모든 성공의 열쇠인 것처럼 비춰져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성적에 목숨 거는 일부 한인학부모들의 특성상 으레 “공부만 잘하면 공짜로 명문대학까지 다닐 수 있는데 너는 도대체 뭐하는 거니?”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일이 적잖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최근 칼리지보드의 SAT시험 채점오류 사태로 인해 각 대학의 합격 통보 발송 업무가 큰 차질을 빚고 있지만 조만간 각 가정마다 합격 통지서가 날아들 것이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겠지만 혹시 불합격했더라도 자녀 앞에서 부모가 더 크게 낙심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다.
기회는 또 다시 찾아올 것이고 2년제 대학을 거쳐 편입하거나 사회 경험을 쌓은 뒤 진학하는 방법도 있고 부모가 원치 않는 분야로 진출하길 원할 수도 있다. 목표점에 다다르는 방법은 서로 다르고 목표점도 모두가 같은 곳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어떤 길을 최종 선택할 것인지는 자녀의 몫으로 믿고 남겨두는 부모들의 용기 있는 결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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