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돈 주고 살 수 없는 교육’

2006-03-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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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1부 차장)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1.5세들과 2세들에 대한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다.
대화 내용인즉, 우리 주위에는 미 주류사회에서 미국인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실력을 발휘하는 한인 2세들이 많긴 하지만 이들이 한인 1세들과 한인사회를 이해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지인 중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한인 1세들의 바램이야말로 후손
들이 미 주류사회에 진출해 우리가 이룩하지 못했던 일들을 성공적으로 후련하게 해결해주는 것이다.

물론 미 주류사회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한인 1.5세와 2세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모르고 오로지 미 주류사회 속에서만 활동하는 이들을 보니 왠지 씁쓸하다.”집으로 귀가하며 차안에서 30여분간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너무나 일
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현실이 기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담배 한 갑을 사려고 집 앞에 있는 델리에 차를 세웠다.
인도인이 운영하는 델리 안에는 주인과 함께 그의 아들로 보이는 10대의 젊은 청년이 캐쉬대 앞에 서 있었다. 문득 고교시절 친척이 운영하던 델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기자의 마음속에 잔잔하게 찾아왔다.‘어렸을 때는 델리에서 손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며 ‘훗날 꼭 성공
하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회상에 젖은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차에 탔을 때 마치 어두운 밤길을 환하게 밝혀주듯 무엇인가가 기자의 머릿속을 스쳤다.


한인 1세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위해 ‘최고’만을 고집한다. 학교도 좋아야 되고 옷도 예뻐야 되며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도 가장 우수한 곳으로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게 한인 1세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세 스스로의 마음속에는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델리와 야채가게, 세탁소, 잡
화가게, 뷰티 서플라이 가게, 네일살롱 등은 결코 ‘최고’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많은 한인 1세들이 자신의 비즈니스와 자식들을 될 수 있으면 연관시키지 않으려 한다. ‘너희들은 자라서 부모님처럼 고생하지 말고 좋은 직장 찾아서 편안하게 살아야 된다’라고... 이러한 생각이 결국 한인 2세들과 한인사회의 틈을 점점 더 멀어지게 한 가장 큰 요소가 아닌가싶다.

아들과 딸들이 부모가 운영하는 비즈니스를 직접 체험해보고 과연 엄마 아빠가 어떻게 일하며 우리를 키우고 있는지 깨우쳐 주는 것이야말로 2세들 개인적으로는 진정한 삶의 체험이고 더 나아가서는 더욱 더 발전된 한인사회를 이룩하는 열쇠라는 것이 기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내린
결론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오늘날 자랑스러운 코리안 커뮤니티를 형성한 한인 1세들의 마음을 2세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2세들이 직접 야채를 다듬어보거나 땀을 흘리며 프레서를 작동해보기도 하고 새벽 수산 시장에도 나가봐야 된다. 부모된 입장에서 자식들을 위해 최고만을 주고 싶은
건 당연한 이치겠지만 세상에는 결코 금전적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올 여름에는 비싼 서머스쿨도 좋지만 진정한 삶의 현장을 자녀들에게 일깨워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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