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추가루

2006-03-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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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항문대장외과 전문의)

지난 주말 필자는 시카고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게 되었다. 짧았던 비행이었지만, 렌트카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생각나는 것은 뜨끈한 갈비탕이었고,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인 타운을 쉽게 찾을수 있었다.
뉴욕 토박이인 나에게 멀지않은 시카고도 타지인지라 구수한 사투리로 인사하는 웨이터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식단표를 보지도 않고 음식을 주문하였다. 불과 5분도 되지않아서 갈비탕이 준비되어 나왔다.
하얀 갈비탕에 떠있는 고추가루를 모른 척하고 숟가락을 들어 보니 거기 역시 말라붙은 고추가루가 있었다. 보리차로 적셔서 닦으려 물잔을 들어 보니 물잔에는 립스틱이 묻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다 좋았다. 그런데 물잔과 수저를 바꾸어 내주며 웨이터가 던진 한마디가 문제였다.

“그런게 있어두 소독은 다 된거라 대충 드셔도 병 안걸립니다.”
어쩌면 그날 난 우연히 시카고에서 제일 위생관념 없는 식당에 들어 갔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웨이터의 말대로 묻어있던 것들이 모두 위생상 안전한 것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대충대충이라는 무서운 사고 방식이다. 가끔 우리는 신문의 논설난이나 잡지 등에서 각계의 생각하시는 분들이 걱정하는 마음으로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과 또 그 급한 성격에서 함께 나오 게 되는 “대충주의”에 대해 우려하는 말을 접하게 된다. 좋은게 좋다는, 두루뭉실하게 살자는 생각에는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구렁이 담넘어 가듯 그냥 넘어가자는 “대충주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심지어 과학계에서 마저 “대충주의”의 소산으로 겪은 피해와 망신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한인이기 때문에, 일본 이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적인 감정 때문에, WBC 게임으로 일주일 잠을 설치고도 피곤함 보다는 분하고 억울함 밖에 남지 않은 필자도 우리가 일본인들에게 배울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는 바로 작은 일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대충에 반대가 되는 성격이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세심하고, 창조적인 이들이라고 한다. 이 것들 중 세심한 마음, 작은 것들에까지 충실한 마음이야 말로 정직하고 부지런한 이들의 기본이며, 창조적인 새로운 발전의 바탕이 아닌가 싶다. 특히, 외과 의학계에서 보는 일본인들이
란 지독할 만큼의 완전 주의자들이고 꼼꼼한 이들이다.

영어에 “to get away with” 라는 말이있다. 직역은 “무엇을 하고도, 또는 무엇으로도 괜찮다”가 되지만 그 의미 뒤에는 “대충주의”가 숨어있는 것이다. 필자와 같이 오래 일해온 레지던트들과 Fellow들은 평소 감정 표현이나 불만이 없는 필자를 화나게 만드는 말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말은 더 잘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안이한 사고방식, 대충대충의 사고방식이 들어 있는 형편 없는 태도이며, 더욱이 생명을 다루는 이들에게 있어서 위험천만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찬란한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의 후예들이다. 우리는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에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러질 만한 선비의 나라를 이룩한 이들의 후손이다. 우리는 그 민족의 이민자들로서 바로 세계를 향한 얼굴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작은 한반도의 한인이 아닌 세계의 한인이 되었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세계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짧은 세월에 엄청나게 많은것을 이룩한 우리는 스스로 칭찬할만 하지만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 폐단적인 사고방식을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월드컵을 보는 열정으로, WBC 게임을 응원하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대충 닦다가 남아 말라버린 정신적인 고추가루를 꼼꼼하게 깨끗이 닦아낸다면 개개인의 발전은 물론 한인사회의 발전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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