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돈만 내는 봉 노릇은 그만”

2006-03-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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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1부 부장)

한인과 중국인들이 지난 24일 플러싱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기금모금 행사에 한·중 취재기자가 현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전 퍼스트 레이디인 힐러리 의원의 경호를 담당한 비밀경찰 요원들이 행사가 열린 대동연회장 입구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모든 기자들의 행사장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힐러리를 위한 미주한인들’과 ‘힐러리를 위한 미주중국인’들이 공동 주최했으며 한인권익신장위원회 박윤용 회장을 비롯한 한인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행사장인 대동연회장에 한인 언론사 기자들을 초청, ‘모금행사에 관한 설명회’까지 가진 바 있다.
당시 박 회장은 “친한파 정치인으로 알려진 힐러리 상원의원의 재선을 지원하는 일은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를 위한 보험을 드는 일과 같다. 기부금만 전달하고 사진 한 장 찍는 구태의연한 행사가 아닌 한인사회의 현안이 함께 전달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한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설명회에 동석한 다른 한인 관계자들도 서류미비자 정착문제, 평등 교육시행, 한인 권익 및 정치력 신장 등 한인사회 주요 이슈를 언급하며 한인들이 “이번 행사에 참석,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자”고 덧붙였다.


주최측은 한인 언론 보도를 통한 한인사회의 더욱 높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이 행사에서 기자들과 힐러리 의원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이같은 내용은 한인 언론들이 충실하게 전달했고 실제로 일인당 최소한 250달러를 기부해야 하는 당일 행사에 한중 인사 300여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 당일 힐러리 의원 경호원들의 출입 통제에 대해 기자들의 항의를 받은 박 회장은 “할 말이 없다. 뒤늦게 연락을 받아 나도 당황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힐러리측이 최근 언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 달라”는 변명만 늘어놓았다.이는 ‘힐러리를 위한 미주한인들이’ 이번 행사를 홍보할 때는 마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한 것과는 달리 사실상 행사 주최 역할이 아니라 한인사회를 상대로 ‘기금 흡입기’ 역할만 했음을 시인한 것이다.즉 한인사회를 힐러리 의원에게 필요에 따라, 원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치러 선거자금이나 모금해 주는 ‘봉’으로 만든 셈이다.

힐러리 의원의 2006년 재선을 위해 뉴욕, 뉴저지 한인들이 이미 최소한 21만달러 이상을 제공해 주었음에도 소위 ‘행사 주최측’이 사전에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사전 발표와 다른 내용의 행사를 강행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 주류 정치인들을 후원해야 한다는 이유로 한인들로부터 돈을 거둬 주류 정치인에게 전해주면서도 정작 한인사회에 어떤 이득이 오는지 조차 불분명하고 단지 자신들의 낯만 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행사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시중의 비판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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