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연이 아닌 한국팀의 저력

2006-03-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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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우정공무원)

2002년도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릴 때 축구 관계자들이나 우리 국민 대부분은 16강 진출을 목표했으나 8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 세계 인구의 5분의 4에 해당한 시청자들에게 한국스포츠의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금번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지역예선대회가 일본 도쿄에서 시작할 때만 해도 2장 티켓이 아시아지역에 배정되어 있어 예선 통과, 8강에만이라도 들어가기를 바랬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는 일본은 프로야구 역사(50년)로 보나 저변, 저력, 기술 등으로 볼 때 쉽게
이기지 못할 것으로 보았고 대만 역시 상당한 수준이어서 경기 당일의 내·외적 변화 요소가 작용한다면 혹시 패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과 기우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면서 일본, 대만, 중국을 차례로 물리치고 적지에서 3전승으로 지역예선 1위로 8강에 입성하더니 신기에 가까운 우리 선수들의 투지와 실력으로 멕시코는 물론 야구 종주국으로 세계 야구의 심장 미국을 꺾고 교만하기 그지없던 일본마저 연속
눕히면서 6전 전승으로 4강에 안착, 미국을 비롯 세계 언론들의 포커스를 받아 말할 수 없이 흥분되면서도 한편 한국 야구 수준이 각국의 주목을 받을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했는가 반신반의, 노파심에 의아심이 들기도 했었다.
우리가 단기전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결코 미국이나 일본보다 야구 실력이 앞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 강국들에 거의 버금가는 실력을 이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필자 뿐일까?


한국 야구는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평양 숭실학교에서 처음 가르치고 1910년 YMCA 초대 총무로 선임된 질레트 선교사가 ‘황성 YMCA 야구단’을 창단한 것이 효시라고 한다. 그 후 60~70년대의 소수의 실업팀과 대학팀으로 이어오다가 1982년 프로팀이 탄생, 겨우
24년 나이에 불과하다. 더우기 한국의 국기는 전통적으로 축구로 야구는 이에 밀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야구사 101년만에 세계 제 1회 대회 4강을 계기로 한국 야구가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이 15일 멕시코에 지고 4강에서 탈락할 때 미국 언론들은 우리 고유의 운동경기를, 우리 땅에서, 우리 편인 심판을 가지고도 참패한 원인은 선수단의 열정(집념) 부족이라고 꼬집기도 했으며 어느 전문가는 대회 진행에서 홈그라운드의 어드밴티즈(유리한)가 있는데 엉터리같은
어처구니 없는 대진 방식과 온갖 오심으로 꼼수를 부려 시청자들의 이맛살을 주름지게 하고도
중간에 탈락, 망신을 샀던 것은 주최측(미국)의 농간이 먹혀들어가지 않는 사필귀정이라 했고,
미언론(LA타임스)도 미국 야구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대회라고 혹평했다.
이렇게 4강에서 탈락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미국이 손쉽게 결승까지 올라 우승할 수 있도록 대
진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미국 스스로 설치한 덫에 발목을 잡힌 꼴이 되어버렸다.

황당하게도 미국이 만든 해괴한 규정 때문에 4승3패 하고도 일본은 결승에 진출하고 한국은 적
지에서 6승1패의 더 좋은 성적을 내고도 결승 진출이 좌절된 원인이 한·일 두 팀이 한 대회에서 세 번씩이나 맞붙는 것은 비상식의 극치로 각종 세계 어느 대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진 경기 운영 사건으로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그러나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으나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위치한 메이저리그 본산(역사적)인 명예의 전당(The Hall of Fame)에 4강(WBC) 이상의 유수한 선수들의 소장품을 기증받아 전시하는데 한국팀 이승엽(공격) 선수의 배트와 이진영(수비)선수의 모자를 기증하게 된 것에 대해 축하를 보내며,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대회 준결승에서 아쉽게 일본에 패했지만 4강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잘 싸워 세계 만방에 코리아 열풍을 지핀 한국선수단의 실력, 매너 등이 최고수준급임을 보여줘 승리한 것이나 진배없어 우리 모두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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