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안의 시대를 살며

2006-03-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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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맨하탄 파라다이스클리너)

나이가 비슷한 정신과 전문의 한 분과 교분이 있어서 나는 가끔 그의 진료실을 방문하여 환담을 나누곤 한다. 그 분이 어느 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어느쪽이 환자인지 의사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고 검사와 범인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느쪽이 검사이고 범인인지 잘 모르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기가 한번은 수용환자가 많은 롱아일랜드의 어느 정신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 환자가 잔디밭에서 낚시대로 고기를 잡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고기 좀 잡힙니까?”하고 물었더니 낚시꾼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오늘은 통 물지를 않는군요”
라며 대답해서 “그럼 많이 잡으십시오”하고 돌아서 가는데 그 환자가 하는 말이 “미친X 잔디밭에서 무슨 고기가 잡히냐?”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고 했다. 이 환자는 돌지 않았는데 내가 돌았다고 생각하고 고기가 잡히느냐고 물은 내가 이상한건지 아니
면 왔다갔다 하는 저 환자의 순간적 망상을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인지 모르겠다라는 말도 곁들였다.


또 한번은 입원환자를 회진하는데 환자가 자기의 모든 소지품을 열심히 뒤지면서 무엇을 찾고 있기에 “무엇을 찾습니까?”하고 물으니 “나를 찾고 있소?” 하는 아주 철학적인 환자도 있다고 한다. 그 분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인구의 1% 내지 3%가 정신적으로 문제
를 가진 사람이라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
더우기 현대는 불안의 시대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며 누구에게든지 조금의 우울증, 불안증이라든가 혹은 강박증 내지 신경증이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거기다 뉴스라도 들을라치면 하루종일 머리끝이 쭈삣 서는 나쁜 뉴스만 나와서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
도 한다.

그래서 길거리를 나갈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것같은 생각에 집에서 꼼짝도 움직이지 않으며 집에만 박혀있는 두문불출의 환자들도 많다고 한다.거기다 아름다운 뉴스는 이야기거리가 되지를 않는지 누가 누구의 생명을 구해주고 누가 꺼져가는 생명에 장기를 기증했다는 그런 용기있고 희생적 사랑 이야기도 많다고 하건만 그런 이야기는 자극이 없고 재미가 없는 것 같아 뉴스거리도 되지를 않는다고 한다. 다들 뭔가 ‘쇼킹’
한 뉴스거리를 기대하며 사는 것이 습관화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나날이 발달하는 컴퓨터, 팩스, 휴대폰 등으로 사람 대 사람의 접촉은 점점 적어지고 심지어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이제는 음성보다는 문자로만 간단히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몇년 전만 해도 은행이나 혹은 뉴욕시정부 어느곳에 전화를 하면 사람이 나와서 안내도 하고 설명도 해주고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곳을 전화해도 녹음된 목소리로 몇번을 “몇번 눌러라. 그 다음 그 다음” 차가운 기계음만 나오고 직접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적어진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한국에서는 보통 3대가 오손도손 같이 살면서 머지않아 돌아가실 것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제 막 태어난 젖비린내 나는 어린 생명이 같이 살며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았는가 새삼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세태가 변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런 가정이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한다. 더우기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하여 핵가족 제도의 발달은 태어나도 얼마 있지 않아 혼자가 되었다가 보육원을 거쳐 유치원 등지로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하도록 훈련
을 시켜 나간다. 이런 아이들이 커서 부모의 사랑을 잘 느끼며 정말 완숙한 인격을 가진 성인으로 커 갈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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