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머피의 법칙

2006-03-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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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차장)

한창 급할 때, 혹시나 했던 일들이 꼭 일어난다.
지하철을 타려고 종종걸음으로 가보면 바로 눈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고, 출근길에 옆 차선이 잘 빠지는 것 같아 차선을 바꾸면 그쪽이 막히고 원래 가던 길이 잘 뚫린다.바쁜 마감시간에 프린트를 한 장 뽑으려고, 프린트 기능을 눌러놓고 가보면 종이가 부족하다.한두번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까, 마치 프린터 종이를 새로 넣는 일은 내가 도맡아하는 것 같다.

‘머피의 법칙’은 미국의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머피가 1949년에 발견했다는 인생법칙이다. 이것은 ‘잘못될 소지가 있는 것은 어김없이 잘못되어간다’는 의미로, 인생살이에 있어서 나쁜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는 설상가상의 법칙으로 곧잘 인용되는 말이다.
자꾸 ‘설마’했던 일들이 마음이 급할 때 일어나다보니, 나 자신이 원래 재수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그러나 머피의 법칙은 현상은 그대로 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자기에게 불리하게 느껴지는 심리현상일 때가 많다. 지난해 골프를 치면서 앞으로 머피의 법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결심했다.


어떤 나이 지긋한 분이랑 같이 골프를 칠 때였다. 보통 골퍼들은 그린에 공을 올린 뒤에는 퍼팅 라이를 읽느라 정신없다. 한 타라도 줄이려면 앞뒤 라이를 정확히 읽어야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런데 이 분은 그린위에서 자신 뿐아니라 남들이 남긴 디봇을 정리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퍼팅을 하고 카트로 돌아가면서도 눈에 띄는 디봇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참 열심히 하시네요” 의례적으로 한번 인사를 건넸다.“다음에 또 올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하면 지신(地神)이 골프 잘되게 도와줘.”일순간이지만,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작은 일이지만 귀찮아하지 않고 덕을 쌓는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편해지겠구나.’그때 이후 그린위의 디봇을 항상 내가 정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소한 마음가짐 하나가 신경질날 수 있는 일들을 아주 편안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프린터 기계에는 종이가 부족
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떠랴. 그냥 내가 종이를 채워넣으면 될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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