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탈린의 말도 믿을 수 있나”

2006-03-21 (화)
크게 작게
이홍재(은행인)

말죽거리 언덕배기 「언주국민학교」 4학년짜리 코흘리개가 때아닌 난리를 만나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우마차 뒤를 따라가는 피난길에 올라 당시의 광주 숫골(성남시)과 분당리(분당시)를 거쳐 어른들 얘기로 천혜의 피난골이라는 동막골에서 수박서리, 감자밥, 벌거숭이로 물장구
치면서 쌕쌕이가 나쁜 비행기(?) 떨어뜨리는 것도 구경하고 한달여만에 귀향 도중 분당리 아니면 썩은배미(밤 한송이의 무게가 서근이 나갔다 해서 서근밤인데 와전된듯 함) 근처에서 난생 처음 키 크고 코 뾰족한 서양 군인들과 몇 대의 트럭을 구경했다.
강산이 초토화하고 삼천만 동포의 가슴을 찢은 6.15전란의 역사가 안방 시어미 얘긴 묵살하고 부엌 제 계집 말만 곧이듣는 외골수의 학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기록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요, 후손들에겐 낯 뜨거운 일이다.

땅속이나 깊은 물 속에 묻히거나 잠긴 선조들의 유물이 더러 햇빛을 보지만 썩거나 연기로 영영 사라진 역사를 추측이나 개연성으로 기록하면서 자기 주관까지 개입된다면 유전자가 완연히 다른 남의 자식을 자기 아들이라 고집하는 것보다 훨씬 무모한 일이다.
이해가 상충되는 동족간의 반목과 갈등도 문제려니와 타민족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에서 그 피해를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세칭 진보적 색깔의 학자들이 쓴 「해방전후사」가 급진과 편견, 또는 아전인수로 많은 문제점이 있다 해서 일명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같은 제목에다 「재인식」이란 표제를 덧붙여 다른 방향에서 재조명한 역사서가 출판되어 양계파의 대립과 동시에 항간에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나 민족의 흥망이 역사 인식에 정비례한다는 논조의 주창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관(史觀)을 거론치 않더라도 한 국가의 역사적 ‘패러다임’을 두고 국론 통일이 안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나 학구적 존쟁은 사학 발전에 소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도 배제할 수가 없
다. 단,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교수가 「한국전쟁의 기원」을 기술하면서 미 군정의 방대한 문서를 섭렵, 남북 분단과 전쟁의 원인이 미국측에 책임이 더 있는 듯 기술한 것은 일견 객관성을 띤 듯해서 한국의 좌파 학자들에겐 “이게 웬 떡”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학자적 양심과
순수한 학구적 열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기라성같은 학자의 세계, 미국에서 좀 튀고 싶어 학설을 위한 학설을 뻥튀기 했을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아울러, 우리의 왼쪽 교수들의 국수(國粹)적 민족주의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무시한 채 따로 국밥의 통일밥상만을 외치는 앵무새들을 선동하는 역사 기술(記述)은 지양돼야 하고 국민들 역사인식 분열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사상, 영토 등 어느 구도상에서라도 6.25전쟁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방 전후사를 통틀어 절대적인 사건이다. 역사의 문외한인 필자의 생각에 그 전쟁에 소련의 불참은 평생두고 불가사의한 상념이다.

전쟁 발발 한달 내에 공중전에서 적기 추락을 보았고, 서울과 분당 상거에 서양군인들을 목격한 것과 시공적으로 미군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단언할 수 있다. 더구나 스탈린의 절대적 지지와 사주, 또 원조를 받아 김일성이 남침해서 생긴 전쟁인데 스탈린이 피를 나눠마신 아우 김일성을 전쟁터에 내보내면서 총알 없는 빈 총에 총 쏘는 기술을 가르치는 고문단만 보냈다면 누가 믿겠는가.
필자는 천재도 둔재도 아니고 단지 총기가 한참 좋을 나이의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 터무니 없는 착각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 범상치 않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고 물증 확보를 위해 정계, 학계, 기타 유관기관이 사력을 다해 소련 정보기관의 문서를 입수, 참작해서 통일된 역사책이 새로 써져야만 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