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죄는 미워도...

2006-03-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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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최근에 앞날이 창창하다고 촉망받던 부시대통령의 한 젊은 국내 담당 보좌관이 절도혐의로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있어 깜짝 놀랐다. 그것도 연봉을 16만달러 이상이나 받는다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고작 백화점에서 연속적으로 좀도둑질을 해왔다는 절도죄라 하니 말이다.
도둑질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이 사람의 기가 막히는 한 가지 아이디어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서 그 물건을 차에 갖다둔 다음에 도로 그 백화점으로 들어가 꼭 같은 물건을 골라 캐쉬어에게 들고가서 이번에는 먼저 샀던 물건값의 영수증을 내밀고 환불을 받아가는 수법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방법은 들킬 염려 없이 완전범죄가 가능한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였다.

이에 재미를 붙인 이 사람이 여러번 이 수법으로 도둑질을 계속했는데 결국에는 꼬리가 길어 백화점의 시큐리티가 이상한 감을 잡고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의 크레딧카드 사용 내역을 조사하게 된 수사기관이 이같은 수법으로 이미 수많은 도둑질을 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내가 여기서 이 사람의 도둑질 내력을 굳이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들킬 염려가 없다면 이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이 사람은 최고의 학력과 커리어를 거친 손꼽는 엘리트에 속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들키지 않는 이런 환경이 주어진다면 도둑질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인 것이 판명된 것이다.


퀸즈 형사법원에 좀도둑질 혐의로 체포되어 오는 한인들이 심심찮게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의 거의 모두가 한국에서 갓 이민온 사람이거나 어학연수 목적으로 방문중인 젊은 학생들이가. 그 중에는 심지어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사람도 방학중에 여행 왔다가 이들 부류에
낀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두가 이곳 사정에 어두운 신참들이다.
이들이 좀도둑질을 하게 된 심리 상태를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너무 명백했다. 이곳 백화점의
경비 시스템이 한국과 달라서 얼른 보면 아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플러싱에 있는 메이시 백화점의 한 캐쉬어 카운터는 바로 출구 옆에 설치되어 있는
데 많은 경우에 아무도 근무하지 않는 때가 있다. 이러다 보니 물건값을 지불하러 캐쉬어 카운
터에 갔다가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순간 마음이 바뀌어 물건값을 지불하지 않은
채로 바깥으로 나와버린다.
도둑질일 망정 들키지 않을 수 있다면 스스럼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들이다.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마치 득도한 사람이나 실천할 법한 말이다. 내가 형사법원에서 일하다 보니 범죄 혐의자의 신분으로 법정에 나온 사람들을 대하기 마련이지만 그들의 범죄혐의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씌워 남을 고발해 놓고 자기는 피해자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미워해본 일이 더 많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죄의 종류에 따라 그 사람을 보는 느낌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보통사람의 감정일 것이지만 그 중에는 특히 내가 도저히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부류가 있다. 그들은 중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니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큰 사건을 저지른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아마 법원에서 취급하는 죄목 중에서 가장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바로 이 좀도둑이다.내가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제쳐놓고 하필이면 이런 좀도둑을 미워하는 이유는 물론 그 죄가 무거워서가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상태, 즉 남이 모르면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그 치졸한 인격 때문이다.젊은 청소년들이 이런 좀도둑 범죄로 잡혀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픈 일이다. 이들이 이런 치졸한 인격의 소유자로 돼버린 원인을 생각해 보자. 필경은 그들의 가정이 정직한 삶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빨강 신호등이면 남이 보지 않아도 기다려야 되는 원칙을 가르쳐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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