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캐츠킬 인디안 헤드

2006-03-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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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캐츠킬 인디안 헤드. 3,575피트. 2,000피트까지 자동차가 올라간다. 정상까지는 1,575피트. 올라 갈수록 험난하다. 인디안 헤드는 뉴욕 북부 근교의 3,000피트 이상의 높은 산 40여개 중 하나다. 바로 옆에 트윈이 있다. 산 정상은 4,040피트다. 인디안 헤드의 정상과 형제처럼 나란히 솟
아 있다. 뉴욕시에서 약 2시간 거리다. 어둠이 일찍 내리는 산이라 시간상 트윈엔 올라가지를 못했다.

아직도 눈은 녹지 않았다. 3월, 봄이다. 그러나 지난 번 내린 폭설로 인해 산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트레일)은 눈으로 덮여 있다. 눈이 녹아내린 곳은 얼음으로 덮여 아이젠을 신지 않으면 도저히 미끄러져 올라갈 수 없다. 아이젠 소리가 둔탁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푹푹 파고 들어가는
아이젠의 송곳니에 얼음이 파헤쳐 진다.
3,000피트까지 올라갔을 때 절벽이 나타났다. 눈이 녹지 않은 절벽이다. 얼음이 간간이 덮여 위험천만이다. 그런데도 앞장을 선 친구는 원체 산을 좋아하는 친구요 고등학교 때부터 산을 타서인지 거침없이 올라간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다. 트레일을 따라
산 정상을 넘어 다른 길로 하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올라가다 만난 다른 산행 팀들은 이곳을 넘지 않고 그냥 되돌아갔다. 그 팀들은 모두 여덟 명
인데 여인이 네 명이었다.


마음먹고 올라야지, 그렇게 호락호락 올라가기 쉬운 절벽 코스는 아니다. 경사가 약 70도 정도. 발 한 번 잘 못 미끄러지면 추락이다. 여름 날 눈이나 얼음이 없을 때와는 다르다. 위험이 따른다. 절벽코스를 기다시피 올라갔다. 뿌듯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런 난해한 코스가 몇 개나 더 나왔다. 절벽과 절벽 사이로 오르는 코스. 아직도 정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올라야만 한다. 앞선 친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간다. 따라야 한다.
갑자기 오기가 생긴다. “그래, 해보자. 어쩔 수 없다. 뒤돌아보지 말자.”“여기만 오르면 정상이겠지” 천만이다. 또 나온다. 지도책에 나와 있는 안내로는 인디안 헤드는 난이도가 상당이 높은 산이라 나와 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란 옛 시 구가 문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다. 오르는 길만 선택된다.

드디어 난코스의 인디안 헤드 정상을 밟는다.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정상에 선 사람만이 정상을 안다. “산에는 무엇 때문에 가느냐?”란 질문에 “산이 있어 산에 간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인디안 헤드의 정상은 숲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정상에 선 세 사나이. 결국 별 장비
도 갖추지 않고 아이젠 하나만으로 난코스의 인디안 헤드를 올라 있다.
지난 해 스물 한 번의 산행을 했다. 주로 오른 산들은 베어 마운틴을 중심으로 한 산들이다. 베어마운틴은 1,200피트다. 산은 얕지만 명산이다. 오르는 곳은 그리 가파르지 않다. 그러나 올라 보면 경관이 명관이다. 언제 올라도 좋은 산이다. 산의 세가 좋다. 그래서인지 베어 마운틴을
찾는 사람은 많다. 멀지도 않고 오르내리는 시간도 길지 않다.
지난해의 산행을 통해 어느 정도 산에 맛을 들여 났나. 이제는 산에 가는 것이 쑥스럽지 않다.

산행을 인도하는 친구 왈. “지난해 산행은 마이너 산행이었고 올 캐츠킬 산행은 메이저 산행이다. 케츠킬 산의 세와 베어마운틴 산의 세는 다르다. 캐츠킬 산행이 더 멀고 어렵다. 이제야 제대로 된 산행을 하는 것”이라 말해 준다.
인디안 헤드 산행은 올 들어 일곱 번째 오른 것. 캐츠킬지역 산행 첫 번째다. 인디안 헤드 트레일을 따라 오르다 보면 트윈 정상으로 가는 길도 나온다. 이번엔 트윈 정상을 오르려한다. 올라가는 산길은 다른 코스다. 약 1마일을 더 가야 한다.
지난해 1월 눈에 덮여 하얀 설산에 오르는 산행을 시작으로 봄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산에 올랐다. 오르는 산행을 통해 산은 말이 없음을 배운다. 그러나 그 말 없음 속에 우주가 내 지르는 큰 말들을 산이 품고 있음을 느낀다. 산은 자연이다.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산
은 사람을 품는다. 주말마다 오르는 산행을 통해 여러 가지를 닦는다. 그 닦음 안에 산을 안고 있는 대지의 너그러움을 배운다. 그 너그러움에 나를 맡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댐을 맛본다.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이제야 흙, 즉 대지의 참 의미를 배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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