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artexpo

2006-03-18 (토)
크게 작게
허병렬(교육가)


아트 엑스포는 뉴욕의 3월을 연다. 이번에도 3월 2일부터 6일까지 허드슨강가 제이콥 제비츠센터에서 열린 이 행사는 이른 봄의 향기를 뿜으며 인파를 모아들였다. 500여 갤러리의 다양한 작품 전시는 모여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즐거움의 핵심은 개별 전시장의 개성미에 있
다. 60억이 넘는 인류 중 어디에도 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작품들의 특색은 제각기 다름에 있었다.

우선 모티브를 생각해 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미술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보이는 것도 형상화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래서 무엇을 작품화하느냐는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구에서 우주까지, 현재에서 미래
까지, 평면·입체에서 4차원까지도 작품에 담는 즐거움을 연출하고 있다.
미술 작품 제작에 사용되는 도구나 자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이것 역시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고 있다. 어떤 제한을 벗어나 각종 매체들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다채로운 자료의 선택, 효율적인 도구의 활용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을 형성하
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혀주고 있다. 그래서 작품들이 더욱 빛을 내며 보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주최측이 표방하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뜻은 무엇인가. 참가 갤러리의 수효도 많지만, 그 안에 담긴 작품들의 개성미에 있다고 본다. 제각기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다르다는 것은 작가들이 지향하는 미의 세계가 다양함을 말한다. 거기에는 결코 우열이 없으며 독특한 개성만이
빛날 뿐이다. 이런 현상은 독창력과 창조정신이 생명인 예술계의 특색일 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에서 강조하는 이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이 행사가 가장 크다는 또 하나의 의미는 관객의 수효에도 달렸다. 참가 갤러리 관계자·미술작가·전문적인 작품 거래상의 인원도 크지만, 일반 미술 애호가들의 수효도 만만치 않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온 가족이 즐기는 나들이객·자녀의 손을 잡고 작품을 관람하는 부모들·
친구와 다정히 속삭이며 장내를 도는 관객들이 넓은 장내를 꽉 채웠다. 미술 작품 감상은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은 미술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건축물들·가구들·실내장치·부엌 설계·전자 제품들·옷과 일상용품들의 디자인과 색채·상점의 쇼윈도·각종 포장지와 카드…
등을 생활 주변에 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은 미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미술 애호가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트 엑스포에도 많은 관객이 모이게 된다.이번 행사에 한국내 갤러리와 미술작가의 참가 수효가 전보다 많았다고 본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올리지 못하였던 것 같아 유감이다. 우리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하나도 받지 못하였을 시절의 캐치 프레이즈는 ‘참가하는 데 뜻이 있다’ 였음을 상기한다. 특히 미술작품의 경우는 우열의 척도가 없고, 다만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앞으로 출품작의 선택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며, 더 많은 작가들의 참가를 바라는 까닭은 문화 교류의 뜻에서이다. 또한 현지 매스미디어들의 협조가 적었던 점도 생각할 문제이다.

각종 박람회 개최의 뜻은 매우 큰 것이 있다. 각 분야 별로 이루어지는 행사들은 전문적인 관계자들과, 관심이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관람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이것은 사회 발달에 크게 기여하는 행사들이다. 각종 방면의 전문가들은 전문 분야의 지식과 기능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여
향상의 속도를 높이고, 일반인들은 필요한 시대의 상식을 얻으면서 삶에 자극을 받는다.
현대사회는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어서 각 방면으로 부단한 노력이 없이는 시대의 낙오자가 되기에 십상이다. 급속한 시대의 변화에 무관심하더라도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시대의 변화를 따라 가느라고 허덕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의미나 영
향을 아는 것도 삶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삶의 형태는 형형색색 다양하여서 각자의 선택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