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칼리지보드의 거만함을 바라보며...

2006-03-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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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2부 차장대우)

미국 교육계는 요즘 SAT 대학수능시험 주관처인 ‘칼리지보드’의 채점 오류 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 합격 통보를 기다리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물론, 한창 서류심사를 마무리 중이던 각 대
학의 입학사정관들은 난데없이 날아든 소식 때문에 말 그대로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리지보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기보다는 ‘피해 학생이 전체 응시생의 0.8%에 불과한 미미한 수준‘이라며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사태 발생 일주일 뒤에
1,600명의 답안지가 재검토 과정에서 누락된 사건이 또 다시 드러났지만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피해학생은 무려 400점 이상이나 성적이 낮게 채점됐는데도 칼리지보드는 문제가 일반에 알려진 첫 날에는 대부분 피해학생들의 성적 차이가 100점 안팎이라며 사태를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100점 정도의 성적 차이는 합격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의 대학 입학심사는 SAT 성적만으로 당락이 결정되지 않는다. 교사추천서, 지역사회 봉사활동 및 학교활동 내역, 고교 내신 성적, 자기소개서 등 여러 항목을 종합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번 사태 수습에 임하는 칼리지보드의 태도는 원래보다 낮은 성적을 받고 애초에 특정 대학의 입학 지원마저 포기해야 했던 4,000여명 피해 학생들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상처입은 어린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비정함 그 자체였다.


특히 시험 성적을 100점 더 올리기 위해 고액의 학원비도 마다하지 않으며 수차례 반복시험에 응하는 엄청난 열정과 수고를 쏟아 붓는 한인학생이나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다만 10점 차이라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간 SAT시험은 끊임없는 논쟁거리를 제공해 왔다. 지난해 비록 작문시험이 추가되긴 했지만 영어·수학시험 성적만으로 지원자의 대학수학능력 전체를 가늠하고 학문적 지식의 깊이를 측량하는 절대적 척도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비영리기관이지만 칼리지
보드는 SAT시험 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대학 입학경쟁은 물론, 다양한 대입 관련 상품의 지나친 상업화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쪼록 이번 사태가 효과적인 대학수능시험 제도로의 변화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주관처에 채점 오류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이름 모를 두 학생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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