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과 종교, 그리고 세상

2006-03-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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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세차(car wash)와 세뇌(brain wash)는 어감은 비슷하지만 그 뜻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세차는 겉이 더러워진 차를 씻어 때를 빼고 광을 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세뇌는 뇌 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관념이나 사상들을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후에 새로운 것으로
교체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즉 세뇌는 충뇌(brain fill)를 하기 위한 전지작업에 불과하다 하겠다.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한 친구가 자기가 방금 읽고난 건강잡지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이 기사를 읽어본 후 다시 더 고기를 먹을 사람은 없다”면서 그 책을 옆에 앉은 친구에게 읽어보라고 던졌다. 잡지를 넘겨받은 친구는 “그렇다면 나는 안 읽는다”면서 마치 뱀이라도 집듯이
징그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 책을 집어 다른 친구에게 건네주는 연속이 되면서 좌중이 한바탕 웃은 적이 있었다.다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공연히 그 기사를 읽고난 후 ‘세뇌’가 되어 끼니 때마다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불편과 갈등을 겪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게다.


잘못된 관념이나 지식은 옳고 바른 것으로 당연히 대체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뇌는 결코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갱단들이 충성단원을 만들기 위해 혹은 공산주의자들이 열성당원을 키우기 위해 같은 방법을 써 온 것을 봐 왔기에 나쁜 의미로만 더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9.11 테러사건 후에 많은 미국인들이 “이제 이슬람교는 적어도 미국땅에서는 끝장이 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난 후 반대현상이 생겼다. 무슬림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사람들이 도대체 ‘코란’에 뭐라고 쓰여있기에 그 종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이렇게 천인공노할 짓을
하는 것인가? 하고 궁금해서 그것을 읽어본 후 자신들도 흠뻑 빠져 무슬림이 되고 만 것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신은 오직 하나’라는 유일신(唯一神) 종교라면 비록 그 밑에 선지자를 따로 정해놓고 있을지라도 결국 같은 신을 숭배하고 있다는 피해갈 수 없는 논리에 도달한다. 그런데도 천년을 넘게 ‘나의 신’과 ‘너의 신’이 따로 있는 것처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터키에서 한 무슬림이 이태리 천주교 사제를 총으로 쏴 죽이고 ‘알라(Allah)신은 위대하다”고 외쳤다. 죽은 후에 천국을 꿈꾸면서 살아 숨쉬고 있는 지구촌을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 또한 종교가 인간을 하수인으로 고용한 범죄가 아니라면 최소한 신에 대한 배반임에는 틀림 없다.

세속적 가치기준으로 보면 무슬림들은 세뇌가 너무 잘되어 거의 광신(狂信)에 가깝다고 해야 될지 모르지만 신앙적 기준으로 보면 그들보다 더 깊은 신앙을 가진 종교인들도 없다. 몸에 좋다는 약도 과하면 독이 되듯이 신앙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이다.
불과 몇세기 전까지만 해도 군사, 경제, 과학, 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가고 번영을 누리던 그들이 지금은 완전히 역전되어 모든 분야에서 낙후되고 가난 속에서 좌절하고 영광이 굴욕으로, 긍지가 모멸로 변하면서 서방세계에 대한 분노를 휴화산처럼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던 중에 ‘마호메트(Muhammad) 풍자 만화’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울고싶던 차에 누가 어깨를 친 격이 된 것이다.
중동학의 거장 ‘버나드 루이스’는 그의 저서 「무엇이 잘못 되었나(What went wrong)」에서 나름대로 예리한 분석을 하면서도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종교의 사슬을 끊어버려야 한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있다. 그들이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비애만이 아닌 전인류의 고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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