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다

2006-03-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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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인류문명의 여명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내지 4000년 전으로 본다. 이 무렵 처음 개화한 문명이 이른바 4대 문명이다. 4대 문명의 발상지는 큰 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평야지대로 유랑생활을 하던 인류가 정착하며 농경문화를 일으킴으로써 문명의 토대가 이루어졌다. 그 지역이
바로 현재의 이라크인 메소포타미아 지역, 이집트인 나일강 유역, 중국의 황하 유역,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이다.
이 가운데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후에 일어난 그리스 문명과 로마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주어 현대 유럽문명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지역에서 생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현대 세계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이 큰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황하 문명과 인더스
강 문명은 각각 중국과 인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쇠잔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발생한 불교와 힌두교, 유교 등은 그 영향권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지 못했다.

근세에 유럽에서 과학의 발전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화되면서 중국과 인도는 상대적으로 후진지역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인도는 유럽의 식민지가 됐고 중국은 반식민지화 하는 운명을 겪었다. 인도와 중국이 온전한 나라로 새출발을 하게 된 것은 2
차대전 이후이다.
그런데 요즘 그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중심무대에서 뜨고 있다. 중국은 지난 1980년대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급속도로 공업화가 이루어져 지난 20년 동안 국내총생산이 연평균 9.3%의 고속 성장을 계속해 왔다. 세계 최대의 13억 인구를 가진 이 나라는 세계 육지의 15분의 1
이나 되는 거대한 영토에 무진장의 지하자원까지 가지고 있다. 세계의 소비제품을 생산 공급하고 있는 중국은 「세계의 굴뚝」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IMF는 중국이 지금과 같은 고도성장을 계속한다면 10년 후에는 미국, 유럽연합과 맞먹는 경제력이 될 것이고 15년 내에 세계
경제의 20%를 점유하여 서구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또 인도는 어떠한가. 1945년 독립 후 인도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경제발전이 부진했다. 그러나 1992년 자유주의 개방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인도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10억 인구가 인도의 잠재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수백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인도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고 영국식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에서는 정부의 힘이 큰 반면 인도에서는 민간분야가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미국에서 부쩍 늘어난 하이텍 분야의 아웃소싱을 인도가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것을 보아도 인도 경제의 저력을 알 수 있다.싱가폴의 리콴유 전 총리는 얼마 전 중국과 인도의 부상으로 세계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고 말하고 두 나라가 협력하면 아시아가 세계에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 바야흐로 아
시아의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중국과 인도가 세계 노동인구의 40%,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경제의 20%를 차지한다면서 20년 후에는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2050년에는 미국, 중국, 인도, 일본, 러시아가 세계경제 5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도
절반은 아시아이므로 5대국 중 아시아가 3.5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런 추세로 인해 중국은 앞으로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겨루는 상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가하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함께 손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한 부시대통령은 인도와 이례적으로 핵에너지 협력 협정에 합의했다. 힘의 무게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문명이 생성, 성장, 융성,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는 문명 순환론을 주장했다. 실제로 인류의 문명은 한 곳에서 쇠락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오리엔트에서 그리스와 로마 등 지중해 문명으로 옮겨 갔고, 이어 서구와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서양 문명으로 발전했고 앞으로 미국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태평양 문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아시아의 시대는 오고 있는가. 이미 세계의 경제대국인 일본과 앞으로 세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중국과 인도의 부상을 보면 분명히 아시아의 시대는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시아의 「작은 용」의 하나였던 한국은 어떻게 될까. 정작 아시아의 시대가 되었을 때 그 중심에서 밀려날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다. 말장난을 하고 골프를 치는데 정신을 팔 일이 아니라 정말로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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