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한민국 품위의 현주소

2006-03-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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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코리안리서치 원장)

2006년 2월 28일 국회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중,
홍준표(한나라당)의원: 총리께서는 지그음~ 대한민국 희대의 브로커로부터 정치헌금을 받고, 그 다음에 골프까지 치고 친하게 지냈다고 했습니다. 통제못할 정도로 거액입니까? 서너번 받으셨습니까?
이해찬 국무총리:전혀 거액이 아니구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소액이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옛날에 여러분들은 그렇게 받았는지 모르지만 새 정부의 공직자들은 그렇게 안합니다.

홍:선거관리를 총괄하시는 분이 열린우리당 당원이고, 선거 주무장관이 열린우리당 당원이라면, 이:(마음 가라앉히면서) 예.
홍:국민들이 이 선거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믿겠습니까?
이:홍의원님은 전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도 자격 박탈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장관님들은 그런 짓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홍:총리! 아~ 저는 총리처럼 그런 ..그 .. 브로커하고 놀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총리처럼 그런 브로커들로부터 정치헌금 받아본 일 없습니다.
이:인신모욕하지 마십시오.
홍:인신모욕이라니요? 김(?)총리께서 말씀하시는게 지금 잘못된…
이:누가 브로커하고 놀아났단 말입니까?
홍:놀아났다고 했습니까?
이: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홍:총리하고 브로커… 처럼…그래 어울려 골프친 일 없다 이겁니다.
이:브로커하고 놀아난 적 없어요.
홍:놀아났잖아요. 골프치고…
이:언제 놀아났어요?
홍:허어 … 참…


위의 내용을 녹취하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데, 그 웃음을 나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해석해보았다.
그 웃음의 첫째 이유는 정부의 수장이라는 국무총리와 모래시계의 국민검사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의 질문과 응답이 너무도 서민적이었다는데 있다. 그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씨는 그렇다쳐도 신성한 국회에서 국사를 논할 때 쓰는 언어는 뭔가 좀 권위적이고 내용은 없으면서도
미사여구나 넘치는 등 뭔가 어딘지 모르게 다를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 나의 예상이 전혀 빗나간데 대해 오히려 안도(?)의 웃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둘째로는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중간 중간 더듬거리거나, 말꼬투리를 잡거나, 남의 성씨까지 바꿔 부를 정도로 흥분되었거나 격앙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그들이, 절제된 언어와 계산된 표정으로 연기하는 어떤 연기자들 보다도 훨씬 더 연기자답다는데서 오는, 드라마를 보
고 난 후에 느끼는 대리만족의 웃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셋째로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토리노 동계올림픽 세계 7위의 성적을 자랑삼으면서 다시 한 번 월드컵 세계 4강 신화를 창조하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직도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는 정부와 국회를 가지고 있나 하는 서글픈 웃음이었다.

이제 그들은 각자, 국민이 보는 앞에서 한 건 했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고, 소신있게 할 말은 했다고 자화자찬 할 런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날 저녁에 어느 소줏집을 빌려 소줏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시금 호형호제를 부르며 잔을 기울이는 뒷풀이 마당을 벌였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러한 안도와 대리만족과 서글픈 웃음을 남긴 이면에 알 수 없는 불안과 허허로움과 희망없는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의 마음을 남겼다는 것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들에게는 다반사인 하나의 해프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을 국가와 민족의 명운을 짊어지고 가는 선량이요, 엘리트요, 지도자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시금 4류 정치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고 이주일씨가 정계를 떠나며 “정치는 코미디다.”라고 한 선언이 전혀 근거없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못내 씁쓰름하다.
다시 한번 그대들에게 바라노니, 정치를 코미디화 하지 말고 코미디에서도 정치를 배우라. 그대들은 대한민국의 품위 그 자체임을 명심하라. (악당잡록:대한민국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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