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젊음의 찬가 토리노

2006-03-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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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흰 눈은 하늘의 특별한 선물이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눈. 모든 것이 희게 탈바꿈하면서 사색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물이 꽁꽁 언 얼음판은 우리 몸과 마음을 비추어 보는 자연의 거울이다. 이 두 가지가 어울린 이탈리아의 토리노가 이번 동계 올림픽의 광장이었다. 이 곳에서 80개국 2,600 여 선수들이 열전을 펼쳤다.
이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첫째, 세계인의 발상 중에서 우수한 것에 올림픽 개최를 최상으로 꼽고 싶다. 그 기원인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에서 제우스 신에게 드리는 제사의 한 행사로서 기원 전 776년에 시작되었다. 그 뒤 약 1500년 동안 중단되었던 올림픽은 프랑스의 교육가 쿠베르탱의 노력으로 1896년 제 1회 올림픽을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열었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선정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세계적인 운동 경기 대회이다. 특히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올림픽의 이상(理想)이다. 그것은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라는 표어로 나타난다. 올림픽 경기는 선수들이 스포츠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온 인류의 화합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함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전쟁처럼 폭력을 써서 싸우는 화이팅(fighting)은 없고, 잘 싸우라는 격려의 말 고(go)만이 있게 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둘째, 우리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는 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겨울이 두 달 밖에 안되는 지역, 경기 인구라야 400명 정도의 한국이 쇼트트랙에 걸려있는 8개의 금메달 중 6개의 금메달을 휩쓴 것은 무엇을 말하나. 또 일본이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피겨 스케이팅 개인 경기에서 금메달을 탄 의미는 무엇인가. 고정관념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멀게 하여, 자기 자신은 좁은 공간에 가둔다.


셋째, 조국 사랑은 부모 사랑이다. 각 국의 출전 선수들을 보면 속해있는 조국애를 발휘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승리하였을 때 흔드는 자국 국기, 응원단이 보이는 각국의 특색, 수상자가 시상대에서 바라보는 자국 국기에 대한 존경 등은 부모에 대한 애정처럼 자연스럽다. 이 자연스러움이 승리로 이끄는 에너지의 원점인 것이다.
넷째, 승자와 패자의 표정에 주목한다. 승자는 감격의 나머지 입을 다물고 기쁨을 가두거나, 활짝 웃거나, 동료를 껴안거나… 다양하지만 모두 감격과 기쁨의 표현이다. 패자는 아쉬움에 젖어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이 표정 중에서 아름다운 것은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경기자의 기능이 엇비슷할 때는 여기에 운이 따른다. 피겨 스케이팅 개인경기 때 우승 후보들이 넘어지는 실수가 계속되었다. 그들은 잽싸게 일어나서 경기를 계속하였다. 그럴 때 분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다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현명하겠다. ‘최선을 다 했다’는 믿음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는 선수들의 성장 과정으로 본다.

다섯째, 운동경기는 종합 예술이다. 하계 올림픽에서도 같은 느낌을 가졌지만, 동계 올림픽에서는 더욱 뚜렷한 현상이 보였다. 선수들의 경기 모습도 다양하지만, 선수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나 장비의 아름다움은 눈과 얼음 위에 펼친 예술의 축제였다. 피겨 스케이트장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은 국가의 개성 표현이었고, 안무의 세련됨, 선수들의 의상은 종합 예술 전시장을 방불케 하였다. 올림픽은 오직 스포츠 경기가 아니고 국가의 총력전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성적인 문화 예술의 총화이기도 하였다.
올림픽은 세계를 젊게, 밝게, 건강하게 만드는 축제이다. 4년마다 올림픽이 열리면서, 전쟁으로는 이루지 못하는 평화를 향한 인류의 꿈에 조금씩 다가간다고 본다. 서로 어울리는 동안 상호 이해하면서 제각기 개성을 빛내고 젊음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세계적인 인화의 모임이다. 특히 동계 올림픽은 흰 눈과 얼음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어 강렬한 색채가 좋은 대조 현상을 보였다. 지금도 크로스컨트리에서 끝까지 정열적으로 눈 위를 질주하던 선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세계의 꿈을 본다.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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