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다리는 삶

2006-03-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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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기(롱아일랜드)

모든 게 빨라도 엄청나게 빨라진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채소도 과일도 빨리 자라게 하는 bio-tech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동물도 빨리 성장시키게 하는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와지고 있다. 인터넷도 전화로 하던 느림보 시대는 지나가고 DSL 이나 케이블을 통한 초고속 연
결이 보편화 되고 있다.
그 뿐 아니고 사람도 빠르고 크게 자라게 하는 약도 종류가 한 두가지가 아닐 만큼 다양하다. 그에 따른 교육도 걸음마도 떼기 전부터 특기 교육을 시켜 세계 수준의 신동을 배출하는데 혈안이 되어가고 있다.
히스패닉은 한국사람을 보면 “빨리 빨리” 왔다고 하고 동남아 식당들에서는 “빨리 빨리” 몇 사람 왔다고 한다니 우리가 얼마나 급히 서둘러대는 사람들로 비춰지는지 짐작이 간다.세상이 빨리 움직이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데 재빠르게 움직일 필요도 있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서둘기만 한다고 다 잘되고 앞장서 간다고는 볼 수가 없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듯, 도로 규칙도 지켜야 하고, 때로는 쉬어도 가야 할 필요가 있고, 밀릴 때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만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가 있다. 우리는 미국 사회에 살면서 미국사람들이 느긋하게 기다리는 관습은 잘 익히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니까 빨리 빨리 서두르고 서두르기 때문에 실수와 사고와 시행 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미8군 경기장에서 미식축구 경기를 구경하곤 했었다.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야전 화장실에 장군이나 사병 가릴 것 없이 줄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부터 50년 전쯤 이미 미국은 공과 사를 가릴 줄 알고 장군이
나 사병 할 것 없이 평등하게 대하는 사회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한국을 떠나온지도 어언 35년이 지났으니 잘 알 수는 없지만 특권층의 월권과 예외적인 우대는 아직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만 같아 보인다.
중국의 총리를 지낸 고 주은래의 가훈 10조 중엔 식당에서는 남들과 같이 줄 서서 기다리라. 극장에 갈 땐 무료 초대권을 쓰지 말라 등이 있는데 그가 생전 가족과 함께 그 가훈을 실천했다고 한다. 장개석이 그를 살려준 일이 있었는데 여러번 장개석을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해 준 의리도 있었던 사람이며, 그는 자식이 없어 10명의 고아를 입양해 다 훌륭하게 키우기도 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남긴 유산이 단돈 5,000 위안 뿐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청렴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 부인도 유언에 장례식을 하지 말고 화장토록 했는데 유품엔 깁고 기운 몇 벌의 옷 뿐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했는지 알 수가 있다. 같은 공산주의였는데 김일성
부자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생 경주를 달려가면서 성급히 서둘지 말고 차분히 참고 기다리며 쉬어야 할 때 잠시 멈추어 쉬어가면서 가자. 우직하고 끈질기고 성실함이 없으면 비록 일시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사상누각처럼 무너져내리게 된다. 황우석의 교훈이 여러가지를 말해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마음의 만족과 기쁨과 평강은 달리는 속도와 반비례 할 때가 많다. 추월하거나 새치기 한 후의 씁쓸한 마음 보다는 조용히 기다리며 숨도 고르면 옆사람과 세상 얘기도 나누면서 웃음을 나눈다면 인생 여정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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