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양극화 해소 제대로 해야

2006-03-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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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6.25전쟁으로 한국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거지나 다름 없었다. 극히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재산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고 겨우 그 날 그 날 입에 풀칠을 하기에 급급한 처지였다. 이렇게 못 살면서도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면서 열심히 살았다. 지금에 비해 인정도 많았던 때였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엄청나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의 경제선진국 대열에 끼게 되었으며 한국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돈을 펑펑 쓰고 있다. 지금 평범한 중산층의 생활은 그 당시 최상류층이 꿈도 꾸지 못했던 호사스런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불만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게 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양극화의 결과인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산업혁명 이후 구미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가장 큰 문제가 빈부의 격차였다. 지난 몇백년간 자본주의 경제는 인류의 경제생활을 급속도로 발전시켜 사람들의 생활은 과거보다 훨씬 풍족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과 생산수단을 가진 부자와 노동력밖에 없는 일반 근로자들간의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한국의 경우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개시되어 자본주의 경제가 만개한 기간은 지난 40여년에 불과하다. 구미에서 400년간 이루어진 경제성장과 발전이 한국에서는 40년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경제발전이 그만큼 빨랐던 것처럼 그 부작용도 그만큼 심각하게 나타났다. 더구나 한국에서 경
제적 부를 축적한 사람들 중에는 순수한 경제활동으로만 부를 이룬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으로부터 특혜를 받았거나 또는 각종 권력을 악용하며 치부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보다 부자들이 더 눈총을 받는다.


한국처럼 자본주의 경제를 뒤늦게 받아들여 빠른 사회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심각한 양극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무한경쟁의 경제체제이므로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한경쟁을 어느 정도 완하하고 약육강식에 의한 피해 규모를 조절해주는 적절한 제도가 없을 경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도로 심해져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자가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20세기 초에 공산주의 폭력혁명이 휩쓸었다. 지금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줄줄이 좌익정권이 들어서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이른바 소득의 재분배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같은 나라에서 부자들에게 누진세를 적용하여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고 극빈자들에게 웰페어를 주는 것은 단순히 인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보완하여 사회적 안정, 나아가서 국민적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고육책인 것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양극화 해소라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실로 한국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에서 잘 사는 사람들은 선진국의 부자들을 뺨칠 정도로 호화생활을 하지만 아직도 다수의 사람들이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번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양극화 현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양극화 해소는 너무도 시급한 일이다.
그런데 서민 편에서 양극화 해소를 부르짖고 있는 정부의 행위를 보면 진정으로 양극화를 해소하려고 하는지 의심스럽다. 부동산정책의 실패로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부자들은 엄청나게 돈을 벌고 서민들은 절망속에 빠지게 했으니 말이다. 지난달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은 현정부가 들어선 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는 통계수치를 발표했다. 이런 판국에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어 부동산과 주식투자로 재산을 불려나가고 있다. 일부 공직자들은 봉급을 꼬박꼬박 저축하여 재산이 증가했다고 재산 보고를 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의 생활비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봉급을 생활비에 다 써도 모자라는 서민들은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한국의 양극화 현상이 박정희 시대의 불균형 경제성장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다. 박정희 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 핑계란 말인가. 한국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과제로 잡은 것은 잘한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해야 한다. 소득 재분배의 결과가 빈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양극화 해소란 구호를 정치적 선동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되며 양극화 해소란 명분으로 집권세력이 기존 부자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불순한 생각을 해서는 더욱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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