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편법과 근성(根性)

2006-03-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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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

우리가 2차대전이 끝나고 일본의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났을 때 나라는 빈 껍데기 가난 뿐이라서 꽤 오랫동안 우리는 우방국, 특히 미국이 원조해주는 식량으로 연명해 온 적이 있다.이 때 우리는 나라에서 주는 식량 배급을 타느라고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고, 이 때
줄서기 순서라는 진리를 실감하게 된 것 같다.
배급을 담당하는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힘이 있거나 줄이 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지 우선권을 주는 권력 남용의 관행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우선권을 누리는 자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줄을 무시하고 먼저 배급을 타 가는 특권을 누렸다. 뒤이은 6.25전쟁 중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제치고라도 먼저 질러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 생존의 법칙으로 자리잡았다.이후로 오랫동안의 불안한 정치, 사회적 환경은 이런 옆 치기나 지름길 편법으로 생활의 거의 모든 곳에 뿌리를 내려서 모든 사람들의 보편타당한 생활 근성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이 시절에는 힘 있는 자는 군복무를 빠질 수 있었고 요사이처럼 이를 나쁜 일로 매도하는 일도 없었다. 힘 있는 자의 당연한 혜택이라 치부해 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근성(根性)이란 뿌리깊은 나쁜 습성을 말하며 좋은 의미로 쓰여진 말은 아니다. 식민지 근성이라 함은 일본의 식민지 생활에서 배운 빌어먹던 습성이라는 욕설이다. 그런데 확실히 식민지 근성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다.필리핀 사람들과 중남미 사람들 사이에는 다른 공통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양쪽 다 한때 스페인의 식민지였다는 한 가지 공통점 때문에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똑같은 문화적 식민지 근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우리는 이 소위 식민지 근성들을 고치려는 많은 노력 끝에 그리고 또 실제로 나라의 형편이 좋아지면서 많은 나쁜 근성들이 고쳐졌다. 그런데 이 지름길 버릇이나 힘있는 자에게 아부하고 힘 없는 자를 짓밟는 악습은 그 뿌리가 너무 깊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남아있어
생활의 철학이 되어버린 듯이 보인다.


지금 미국에서 어려운 그늘 생활을 하고 있는 수많은 한인 불법체류자들이 있다. 이들을 구제하는 제도나 법안이 상정되기를 거의 모든 소수민족들은 바라고 있다. 반면에 지금 조국 한국에서도 수십만이라는 불법체류 신분인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을 다루는 우리의 자세에는 부끄러운 것이 너무 많다. 이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온갖 못된 짓을 일삼는 무리들이 있고, 나라에서 조차 이들의 처리를 위해 사리에 맞는 입법이나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역시 약자를 돌보지 않는 근성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불법체류 신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족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불법외국인들에 대한 냉대는 우리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부끄럽고 한심한 근성이다.나에게는 줄서기라는 생활질서의 기초에서 나라가 망해가는 예감을 얻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때 전쟁의 와중에 베트남에서 잠시 사업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국내 여행을 하려면 Air Vietnam항공을 이용하곤 했는데 비행기표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좌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수백명이 엉켜붙어 아수라장을 이루는 매표장에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종일토록 차례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광경은 마치 정글에서 죽은 짐승의 시체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하이나 떼들의 싸움판 같은 것이었다. 이 때 나는 인간의 규범이 이미 상실되었고 동물같은 본능만이 판을 치는 곳, 곧 한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였고 나라의 끝장을 예감했다.
실같이 가느다란 틈새 물이 큰 제방을 무너뜨린다. 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반 민초들의 생활 습관은 곧 나라가 흔들릴 수 있는 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남을 앞질러 빠른 길로 가는 길만 길이 아니다. 천천히, 그리고 둘러가도 옳은 길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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