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거를 묻지 마세요

2006-03-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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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행(의사,수필가)

우리는 모두 잊고 싶은 과거, 잊어서는 안되는 과거, 또는 잊을 수 없는 과거가 있다.우리 말의 ‘과거’는 단순한 현재, 미래, 과거의 과거가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좋지 않았던 것까지 곁들인 뜻이 있기에 좋지 않은 이력, 경력, 행실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
다. 나도 그런 과거가 있는 사람이 아니길 바라지만, 또한 뜻대로 마음대로 잘 안되는 것이 어느 개인의 과거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나를 포함해서 과거를 묻지 않았으면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고 아예 어떤 수치스러운 과거는 깨끗이 잊고 싶을 때가 많다고 단정해 본다. 이런 것이 우리 모두 개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사회, 국가에까지 없는 곳이 없다. 이것이 우리 인류생활, 또는 삶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만 단정한다면 그저 운명에만 맡긴 인생여정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 또 새로운 연구의 초기 보고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지만 “우리들의 아주 처참했던 기억을 없애보자”는 과제이다. 어떤 약물을 처참한 기억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투여함으로써 그 기억을 없애버리게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한 고통에
서 해방되게 하자는 의도의 연구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여인이 강간을 당하고 나서 그 처참했던 고통의 기억으로 일생을 그 악몽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야 한다면 이러한 치료가 그 여인이 행복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의도이겠다.
이 연구가 성공되어 잊고싶은 것은 잊고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것은 그대로 보존할 수도 있다면 좋은 점도 많겠지만 부끄럽고 치욕적인 과거도 많은 경우에 잊지 않음으로서 도움이 될 경우도 많으니 그 분류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즈음, 나 자신도 아예 이런 일이 없었거나 안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해봤지만 분명히 일어났고, 문자로 학술지에 발표되었고, 신문 방송등으로 온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도장을 꽉 찍어놓았으니 과연 쉽게 지워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다고, 있는 것을 없다고, 아직 근처에도 못 갔는데 다 왔다고”하는 사람, 그것도 자기 국민과 국가를 등에 업고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떳떳하게 거짓을 고했던 그 일이 신용과 믿음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신뢰도를 하수도로 던져버렸으니 우리 옛 말대로
<진흙 위에 엎어 쏟아진 물 주워담을 수 있을까> 한다.
아마 이 사람도 자기가 저질렀던 이런 기막힌 거짓의 과거를 과연 깨끗이 잊을 수 있는 길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사용될 수도 있는 이 약물을 열심히 기다라고 있는 사람들이 따지고 보면 수없이 많겠지만 최근 미부통령의 사냥총 사건 같은 것이 오히려 이 분을 개인으로
본다면 이 약물 복용에 아주 적당한 케이스가 아닐까? 내 멋대로 생각해 보았다.이제 아주 크게 손상당한 우리 민족의 성실성과 신뢰도를 찾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런 과거는 잊어서는 안되겠고 아직도 우리 한국사람 중에 이런 인간이 엄연히 있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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