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랑스럽지만 부끄러움도 알았으면

2006-02-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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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우정공무원)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하인스 워드(미식축구선수)는 주한미군과 한국여인(김영희)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으로 생후 5개월만에 미국으로 왔다. 그러나 부모의 이혼으로 루이지애나 조부에게 맡겨져 있다가 8살 때 모친과 함께 애틀란타에 정착, 포르세트파크 고교와 조지아대학을 나와
피츠버그(펜실베니아주) 스틸러스팀에 입단, 지난해 9월 재계약(4년간 2,750만달러, 한화 267억원)하고 수퍼보울 MVP로 선정돼 부와 명예를 모두 얻게 되었다.
작금 본국에서는 워드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하고 연일 보도되고 있음을 본다. 인종차별을 극복한 혼혈아와 그를 키워낸 여성이 한국인이기에 화제가 식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온갖 신고(辛苦)끝에 프로픗볼 스타가 되고 MVP로 선정된 워드와 모친 김영희씨의 곡절(한)많은 사연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적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혼혈인에게 여전히 냉랭하고(본국이나 미주) 차별과 편견이 잔존하면서도 미국 스포츠계에서 영웅시 된 워드와 그의 모친이 한국의 혈통을 지녔다는 사실만으로 자랑하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 꼭 시골 5일장날 북치고 장구치고 빠이롱(바이얼린)이나 퉁수로 흘러간 유행가를 연주하면서 장군들을 불러모은 약장수처럼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것같아 보인다.
그들을 얕보고 멸시하고 손가락질했던 일들로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떠나게 했던 우리네의 부끄러운 일들의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본국의 언론들과 인터넷에서는 김영희씨를 신사임당 반열의 한국대표 어머니로 치켜세워지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예우가 검토되고 기업들은 앞 다투어 이들 모자를 상대로 일생 일대기의 영화제작까지 한다는 등 경쟁중에 있다 한다. 이에 워드와 모친의 4월 방한시 어떤 대우가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혼혈인이나 국제결혼 여성들에게 경멸과 조소를 보냈던 일들로 가슴에 숱하게 못만 박았음을 생각해 보자. 몇년 전 아들과 함께 한국에 온 그에게 누군가 침을 뱉었다고 한다. 그 때의 벅찬 설움은 오죽했으랴. 죽지 못해 살았다고 표현해야 좋을 것이다. 오죽하면 미국에 살면서도 아들에게 한국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겠는가?


우리네는 정말 낯이 뜨겁도록 부끄러워해야 하고 미안해야 할 일이지 열광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 보자.
미국의 저소득층(주로 소수민족)들은 받은 주급의 대부분을 로토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주류사회에 인정받기가 요원하기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려 사람답게 대접받고저 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혼혈인들도 운동선수나 가수 및 연예계에 발탁, 부와 명예를 축적, 성공해야만 멸시 속에서 해방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워드 역시 이를 악물고 경기에 임해 수퍼보울의 MVP 선정까지도 염원했던 것은 어쩌면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필자가 1987년에 롱아일랜드 어느 세탁소에 관여할 때이다. 세탁소 주인 아들(이장원)의 고모 한분은 일찌기 미국남성과 결혼, 시민권자가 되어 그녀의 부모, 형제자매와 연관된 친척이나 인척들 24 가족을 차례로 초청, 풍요로운 새 땅에서 삶을 꾸리도록 도운 여성이다. 이렇게 한 여성의 헌신적인 도움과 뒷바라지로 이민온 친,인척들은 모두가 비즈니스(세탁소, 델리, 의사 등)에 성공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여성도 김영희씨와 같은 곡절은 없었을지라도 물 섧고 산 섧은 이역만리 외로운 곳에서 언어마저 통하지 않는 고통이 대단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필자는 이런 분들(국제결혼)이 정작 누구보다 애국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6.25 한국전쟁과 가난이 낳은 민족사의 부끄러운 비극, 혼혈인의 자식을 둔 가정에서 뿌리까지 상실되지 않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하인스 워드 모친 김영희씨의 과거, 그 고난의 삶을 한 번쯤이라도 우리 모두 기억들을 해보면 어떨런지...
그리고 혼혈인을 위한 제도적인 입법을 하루속히 추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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