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신문화 꽃 피우자

2006-02-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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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선(뉴욕예술가곡연구회 회장)

지난 1월 19일 맨하탄과 플러싱 가곡교실 회원 26명이 링컨센터 에버리 피셔홀 정기 연주회에 다녀왔다. 이 날 연주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교향곡, Liszt 피아노협주곡, Prokofiev 교향곡… 등이 연주되었다.
나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특별히 좋아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번뇌하는 마음도 평화와 희망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늘 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 작곡된 것은 그가 38세인 1808년이었다. 귓병으로 시달리다 절망한 나머지 비통한 유서까지 남긴 채 빈 근교에 있는 하일뢰겐슈타트에서 요양할 당시 자연에서 받은 감명을 작품에 담은 것이 전원교향곡이다.
이 작품은 신록이 우거진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면서 환상적인 선율에 완전히 압도되는 1악장을 시작으로 2악장의 온갖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 3악장의 마을사람들의 즐거움을 나누는 축제, 4악장의 휘몰아치는 폭풍, 그리고 5악장의 다시 찾아온 맑은 날씨 속에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면서 양치는 목동들의 피리 소리가 아름답고 평화스럽게 들려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이 선율을 되풀이해서 듣노라면 괴로움이 기쁨으로, 불평이 감사로 미움이 사랑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온갖 고뇌가 사라지고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평화의 선율이다. 나는 이 선율을 이 세상 모든 음악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세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의 특성이 있다 하겠다.
역대 음악학자들이 베토벤을 가리켜 철학자, 사상가, 인도주의자, 위대한 작곡가라고 추앙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음악은 초인적인 의지와 총체적인 미를 갖추고 있어 그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깊고 크다.음악당을 가득 메운 지성미와 인간애를 겸비한 2,500여명의 아름다운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음악 감상을 한 2시간은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값진 시간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스스로 고백하기에 이른 것이다.같은 시간, 뉴욕시에서만도 수많은 음악당과 리버사이드 처치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박물관과 수많은 화랑에서 예술작품이 전시되고 무용, 연극… 등 공연예술이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각 도시들이 다 이와같이 활발한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어 건전한 정신문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링컨센터 내 카네기홀을 찾아 음악과 무용을 즐긴다. 매번 한국사람을 보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을 본다.
뉴욕에 사는 보람 가운데 하나는 세계 음악의 중심지에서 세계적인 연주가들의 훌륭한 연주를 접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같이 크나큰 문화의 축복을 우리 40만 교포들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국민 전반의 문화 인식이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가 전세계의 큰 각광을 받아오던 중 그의 줄기세포 허위 조작이 폭로되면서 우리 온 한국민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확고한 정직성이 요구되는 과학계의 학자가 온 세상을 향해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수년 전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비리가 온 세상에 크게 보도되어 세계 도처에서 우리 국민을 향해 저주의 소리가 쏟아졌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처럼 엄청난 수치스러운 일이 터져나왔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실로 심각한 위기다.

황우석 사건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정직성 황폐의 실제적 입증이다. 온 나라가 돈 독에 물들고 나라 전체가 부정,부패,비리로 가득차 온지 오래이며 드디어는 정신문화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 한국의 실상이다. 우리 모두가 크게 각성하고 새로워져야 한다.
연꽃도 흙탕물 위에서 피어난다. 오늘의 위기를 거울삼아 우리 모두가 인간정신에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문화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문화 보급을 통한 정직성 회복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아르헨티나도 한때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때가 있었으나 정신문화의 부재와 만연된 사회 부패로 인해 다시 후진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우리도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을 제압하고 현대차가 미국 거리를 누빈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가 물질 노예 현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문화를 사랑하고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누리므로 정신문화를 꽃피우는 아름다운 삶을 개척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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