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생은 파도요, 죽음은 바다

2006-02-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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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가는 인생. 잠깐 바람 부는 것처럼 태어나 살아가다 다시 온 곳으로 훌쩍 돌아가는 인생들. 사는 동안의 삶의 기쁨과 노여움과 사랑과 즐거움 가운데 세월은 가고.
아니 인생은 가고 또 다시 인생들이 태어난다. 태어남의 연속 속에 세상은 이어지고 다시 기쁨과 노여움과 사랑과 즐거움이 계속된다.
얼마 전 홀로 꿋꿋이 살아가던 40대의 한 여인이 세상을 하직했다. 한국에서 홍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유학 와 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10여 년간 뉴욕에서 독신으로 힘차게 살면서 홀로 사는 것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암이라는 진
단을 받고 형제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나갔다가 올 2월 초순에 유명을 달리 했다.
뉴욕에서 진단 받기로는 3개월 혹은 6개월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됐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한국에 나간 그녀는 몇 번 항암 치료를 받다 중지하고 신앙에 의지해 식이요법으로 암과 싸웠다. 그녀는 3개월을 지나고 6개월을 지나고 1년이 지나도록 양호한 상태
로 한국에서 뉴욕으로 명랑하게 전화도 해오다 갑자기 병이 더 위독해져 세상을 달리 했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태어남이 있었기에 삶은 주어지고 삶이 있기에 생은 연장되며 생이 있었기에 죽음이 따라오는 걸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다. 단연 언젠가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손님이 죽음이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은 순서 또한 없는 죽
음이다. 한 번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생의 길이다.
인생의 순환길. 즉 삶과 죽음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삶과 죽음은 파도와 바다 같은 것.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인생을, 즉 삶을 파도라 치면 죽음은 바다로 볼 수 있다. 불과 불꽃이 순간과 영원이 둘이 아니듯, 바다와 파도는 결코 둘이 아니다.
인생으로 태어나 파도처럼 살다 죽음이란 바다로 들어간다면 죽음은 그 무엇의 더 큰 삶에의 연장일 수 있다.
가끔 길 가에 있는 비둘기의 죽음을 볼 때가 있다. 차에 치여 너부러진 비둘기의 죽음과 사람, 즉 인생의 죽음을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이 문제로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의 죽음과 비둘기의 죽음. 이 말은 사람의 죽음과 모든 다른 생물들의 죽음을 비둘기의 죽음에 대입시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사람과 다른 동물을 똑같은 하나의 생물로 보았을 때, 죽음은 사람에게나 비둘기에게나 똑 같은 현상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사람이 비둘기의 죽음을 보고 생각하기를 죽은 비둘기의 시체는 그냥 쓰레기 더미에 들어갈 쓰레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사람의 죽음도 쓰레기 더미에 들어갈 물체와 같아진다.
그러나 사람을 다른 동물이나 생물과 다른 무엇으로 볼 때는 달라진다. 여기엔 종교와 철학이 개입된다. 종교란 과학 즉 철학과는 틀리다. 철학은 과학화할 수 있어도 종교는 과학화하기가 힘들다. 종교를 과학화 혹은 학문화하기 위한 것이 신학이지만, 종교는 신비에 가깝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정신세계와 영의 세계와 가까운 신앙과 믿음이 종교의 근간이 된다.
종교에서의 죽음은 각 종교마다 틀리다. 불교나 기독교는 죽음의 현상을 생의 끝으로 개념 짖지 않는다. 기독교는 죽은 후 부활과 영생이 따른다. 그 영생엔 좋은 영생도 있고 나쁜 영생도 있다. 천국과 지옥 개념이다. 불교도 극락과 지옥 사상은 있다. 반면, 불교는 열반에 들기 전에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죽은 후 다른 형상이나 혹은 같은 형상으로 태어난다는 윤회사상이 있다.

이렇듯 고등 종교에서의 삶과 죽음은 삶이, 즉 생이 파도요 죽음은 바다와 같은 더 넓은 세상에로 안겨 들어가는 진입로가 된다. 그러니 삶과 죽음은 별개인 둘의 세상과 현상이 아니다. 하나의 선상에서의 다른 현상이나 혹은 원의 현상을 그리며 돌아가는 파도와 불꽃이 안길 수 있는 더 큰 바다의 세계와 불의 세계와 같은 개념을 갖게 됨을 알 수 있다.
40여 년을 홀로 살다 바람처럼 가 버린 그 여인은 지금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바다와 같은 죽음의 품 안으로 들어가 천국으로 향하는 영생의 길을 가고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형상으로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까. 아직도 그 여인을 생각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이 생각도 그녀의 부활 중 하나일 수 있고 영생일 수 있다. 사는 동안의 삶의 기쁨과 노여움과 사랑과 즐거움 가운데 인생은 가고 또 인생은 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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