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에 소금을 치라

2006-02-24 (금)
크게 작게
이성철(롱아일랜드)

‘언어의 동물’인 인간, 조물주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였다는 사실, 이 한가지만으로도 넉넉히 긍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인간들이 말을 가지고 온갖 의사 표시를 하며 사상 전달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우리는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의 특권을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악용하거나 남용함으로써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인간 악을 조성하는 일에 대하여선 자못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는 바다.
언어의 위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로 인한 앙화를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의 말이 남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불씨가 되어 큰 싸움으로 번져가는 일들을 적지않게 경험해 왔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는 곧 말의 실수라 하겠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은데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이면 온전한 사람이다”(약3:2)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지중에 말 실수를 범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성군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 내 입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라고 기도드렸다.
20세기의 과학문명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잡다한 공해 속에서 현대인은 날마다 일부살인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학문명의 부산물로서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문명의 찌꺼기로 인해 대기권이 오염되고, 식수와 음식물의 공해, 시끄러운 소음의 공해로 인하여 찌들며 죽어가는 인간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 감언이설, 저주와 악담, 폭언과 욕설 등의 언어공해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 속에서 여과되지 않은 채 무심코 내뱉은 말이 나의 이웃에게 얼마나 큰 해독을 끼치고 있는지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언어)에 소금을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에 소금을 친다는 것은 부드러운 말, 친절한 말을 뜻함이다. 아무리 좋고 유익한 내용의 말이라
해도 그 표현방법이 퉁명스럽고 과격할 것 같으면 듣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말이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속에 감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툭 해 다르고 탁 해 다르다”고 말한다.
“구라파인들이 다 죽는다해도 나폴레옹 한 사람만 살아있으면 된다”고 말한 니체의 말을 명언이라고 박수갈채를 보낼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말은 명언이 아니라 언어의 횡포인 것이다. 뻣뻣한 채소에 소금을 뿌려 부드럽게 하듯이 우리의 말에도 소금을 쳐서 언어 속에 들어있는 가시와 독기를 제거하고 나면 듣기가 한결 부드럽고 상쾌할 것이다.

말에 소금을 치라는 것은 말을 맛있게 구사하라는 뜻이다. 말이란 들을 맛이 있어야 듣게 된다. 누구나 들어서 유익하고 듣는 이의 영혼에 생수가 되고, 정신적 양식이 되어질 만한 가치있는 말을 뜻함이다.
듣는 당시에는 배꼽을 잡을만큼 재미있고 우스워도 듣고난 후에 마음에 간직할만한 여운이 남지 않는다면 일종의 만담일 뿐이다. 결국 그런 말은 ‘싱거운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선천적으로 말이 거칠고 사나운 사람이 있는데 타고난 천성대로만 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말에 소금을 뿌려 짐짓 오해를 사서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현명한 일이라 생각된다.
말에 소금을 치라 함은 언어의 진실성을 뜻함이다. 말의 기교나 재간이 없고 논리가 정연하지 않더라도 진실한 말이어야 한다. 소위 ‘말의 보증수표’라야 한다. ‘누구의 말은 십일조만 믿으라’고 한다면 얼마나 불성실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뱉은 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