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런데 너 숙제는 했니?”

2006-02-23 (목)
크게 작게
아이들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숨기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가정문제가 있거나 적절하게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 아이들은 이유를 설명하기 보다는 숙제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거나, 다른 아이들을 방해한다거나 이유없이 계속 짜증을 내는 등 여러가지 행동적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의 이런 행동들을 접할 때 당황하거나 부끄러워 하고, 때로는 아이를 혼내거나 위협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아이가 그러한 증상들을 보이는가에 대한 탐색은 없다.

자신의 불만족스럽고 불안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타내는 행동들이 다시 부모로부터 비난받을 때 아이는 다시 부적절한 행동방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행동들이 습관화 되면 학령기 시기에 습득해야 할 학업적인 성취와 친구와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아이의 행동의 원인을 탐색하고 아이가 자신을 건강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실제로 불안정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잘 모르겠다’ ‘피곤하다’ ‘하기가 싫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밑바닥의 감정은 인정과 사랑, 그리고 성취 받고 이기고 싶은 욕구가 좌절될까 하는 두려움, 비난받을 것에 대한 불안감,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한 공허감과 외로움 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이런 욕구나 감정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니 힘들지” 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반응만 해주어도 아이들의 표정이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 교육이 자녀교육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가 경험하는 여러가지 사건에 관한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해 주는 방법을 탐색하고 적용해 보는 것이다.

이번에 8주간의 부모 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부모님들이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것을 아이에게 적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부모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부족과 관련이 있다.

부모 스스로가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충분히 이해받는 경험이 부족해 의존이나 사랑에 대한 욕구를 억압한 경우, 자녀가 아무리 자신을 표현해도 그것을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의 억압된 욕구나 관심에 맞춰 자녀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자녀가 정서적으로 불안하여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무관심해 버린다거나, 자녀가 어려움이 있
다는 낌새 조차 느끼지 못한다거나,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불안으로 끊임없이 자녀를 간섭하게 되는 것이다.

한 예로, 자녀가 오랫만에 학교에서 있었던 신나는 이야기를 하자. 한참을 열심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아이의 들뜬 얼굴을 바라보며 “그런데, 너 숙제 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뜬금없는 반응에 아이의 표정이나 감정이 어땠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정서적인 경험을 하고 있나 보다는 학업성취만 잘 하면 부모 역할에 이상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아이의 감정이나 반응에는 무관심한 것이다.

부모의 관심이나 욕구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대화가 이루어질 때 아이들은 언어나 감정으로 적절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가게 되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자신의 힘들음을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내 욕구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느낀다면, 아이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있다면, 혹은 아이와 부모의 성격적인 차이에 대해 탐색해 보고 좀 더 열린 대화 방법을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뉴욕가정상담소 부모교육 워크샵이나 놀이치료 워크샵의 문을 두드리기를 바란다.

유미정(뉴욕가정상담소 카운셀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