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입양인에 혈육의 정 찾아주자

2006-0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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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영(보스턴)

사람 가운데는 태어나면서부터 재물과 명예를 유산으로 넘겨받아 고생을 모르고 편안하게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과의 경쟁 속에서 땀을 흘리며 힘들게 사는 것이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길이기도 하다.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식에게만 좋은 이름을 지어주어 이름 속에 담긴 뜻대로 오래오래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유명 작명가를 찾아 많은 돈을 주고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지어받은 좋은 이름이라 할지라도 살아가면서 겪는 거부감에서 새 이름으로 개명하는 사람도 있다.
개명을 하는 이유 중에는 큰 사건에 연루된 범죄인의 이름과 같거나, 불쾌감 또는 시대의 변천으로 천박하게 들려지는 소리가 듣기 싫어 개명하는 경우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창씨 개명은 강압에 의해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했었지만 요즘엔 본국민 가운데서도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나 그밖의 유명인의 이름을 본따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경향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서양식 이름을 짓는 일이 보편화 되어가는 추
세에서 미주 한인들이 미국 이름을 짓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서양식 이름 짓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에겐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계(家系) 중심 주위에서 이름을 짓는 일이 관습화가 되다 보니 서양식 이름을 짓는 일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가계를 형성하는 족보의 항렬에 따라 지어진 이름을 버리고 궂이 서양식 이름을 지어야 하느냐에 대한 부정론도 없지는 않다. 그런 부정론에 대한 대답은 외국에 나와 살면서 이름으로 겪는 불편이나 차별을 겪어본 사람들이 들려주는 체험의 말이 바른 해답이 된다.
근대 미주한인들 가운데서도 시민권을 받을 때 아예 미국식 이름으로 개명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만난 어느 30대 초반의 여인은 어디를 봐도 한국계 여인으로 보여 한국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반갑게 한국인이라고 영어로 대답해 왔다. 그러나 그 여인의
이름 속엔 한국인을 나타내는 이름은 어디에도 붙여져 있지 않았다. 왜 한국 성이나 한국식 이름을 쓰지 않느냐에 대한 물음에 그의 아버지가 6.25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신의 성이 미국인 양할아버지의 성을 가졌다고 했다.이 여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전쟁과 가난이 빚은 민족사의 비극에서 한 인간의 뿌리가 상실되어 버린 아픔을 그 여인으로부터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쓰렸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18세 미만 한국계 입양아가 4만8,000여명으로 한국은 입양아 수출 세계 1위라고 미연방 센서스국이 발표한 바 있다. 한인 입양이 늘어나면서 입양인대회가 본국에서 열렸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여러나라에 입양된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본국정부도 정확한 수치를 파악치 못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해외로 입양된 우리의 자녀들이 입양인 부모의 품에서 훌륭하게 자라 부모의 나라를 찾아와 혈육을 찾는다는 안타까운 소리도 듣는다. 국제화 시대 국가 체면도 문제이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선진국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지금에도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과 해외 입양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대조를 이루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한인 입양인들이 세계 여러나라에 어떻게 흩어져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 조차 하지 못하는 본국정부도 문제지만 주재국 영사관도 입양인 파악을 관심 밖의 일로 그들의 애틋함을 챙겨주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이제 본국정부는 국적주의 따위의 구차한 변명보다는 주재국 영사관을 통해 지역 한인회나 입양인 단체를 찾아 입양인 파악에 나서는 가운데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혈육의 정을
찾아주는 일에 관심이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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