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플러싱 개발과 중국인의 역할

2006-02-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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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희(한인이민봉사실장)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대만, 홍콩, 마카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지역의 중국인
들은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에 동승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이들은 불안한 정치적 입지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미국에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미국에 정착하려는 일차적인 방편으로 먼저 자본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자본을 먼
저 옮기고 나중에 자신들의 거주를 옮기는 양상을 띤 것이다. 이 투자 대열에는 일부 부유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와 사업가들도 포함되었다.
해외 중국인들은 큰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궁극적으로 미국으로의 이주를 원했기 때문
에 보다 안정적인 부동산에 자신들의 자본을 투자했다. 이러한 부동산 투자 자본이 맨하탄 차
이나타운 뿐만 아니라 플러싱지역의 건물과 상가 매입에 투자된 것이다.
더욱이 대만계 자본과 중국계 자본이 서로 경쟁적인 투자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대만계 자본은 국교 정상화 이후 미국과 중국정부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하자 미국 내
부에서의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수많은 부동산, 백화점, 여행사, 무역전시센
터 등에 투자했다. 반면 중국정부도 대만을 고립시키고 평화로운 하나의 중국 통일을 이루는
방편으로 미국내 부동산 투자를 이용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땅을 소유하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부동산의 소유는 중국인들에게 안
정과 권력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이민 초기부터 각종 협의회와 통(Tong)과 같은 이
익단체, 씨족연합회 등에 가입해 함께 연합하고 비즈니스를 해 나가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단
체들은 하나같이 공동 이름으로 본부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흔히 중국인들은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 공동으로 출자해 비즈니스를 운영하거나 건물을
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여기에는 땅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와 생존의 방편으로 단체에
가입하여 연합하는 중국인의 특성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플러싱 공영주차장 개발 계획의 공동개발자로 선정된 회사는 중국계 종
합개발회사인 티디시 개발건설공사(TDC Development and Construction Corporation)이다. 이
회사는 마이클 리(Michael Lee)라는 중국계 사장이 운영하고 있으며 그동안 플러싱 지역에 본
부를 두고 아파트 단지인 샌포드 타워, 상가 건물인 프린스센터, 플러싱 몰 등 굵직굵직한 플러
싱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지난 2005년 7월 플러싱 공영주차장 개발계획에 맨하탄에 위치한 라커펠러 그룹과 조인트 벤처
를 만들어 최종 사업자로 낙찰되어 가장 중요한 플러싱 개발사업을 주도해 나가게 되었다.
한편 중국인 주도의 플러싱 개발 계획 이면에는 중국계 정치인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2004년
도에 뉴욕시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존 리우 후보가 뉴욕 제 20지구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같
은 해 또 다른 중국계인 지미 맹 후보도 뉴욕주 22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존 리우 의원
과 지미 맹 의원은 적극적인 공영주차장 개발 옹호자이다. 특히 존 리우 시의원은 그동안 수많
은 자리에서 플러싱 공영주차장 개발계획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이러한 달라진 중국계의 정치적 위상과 중국계 자본, 전통적인 단결력과 비즈니스 수완 등이
플러싱을 점차 또 하나의 차이나타운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전통적인 한인타운이었던 플러싱 메인스트릿 거리는 이제 완전한 차이나타운이 되어버렸다. 이
제는 메도우 파크 옆의 고향집, 메인스트릿의 삼복식품점과 남강식당, 키세나 블러바드의 롯데
식품점, 38애비뉴의 삼원식당 등은 우리들의 기억속에 머물게 되었다. 한인들은 유니온 스트릿
과 루즈벨트 애비뉴 일부지역이나 노던 블러바드 선상으로 밀려나 있는 형국이며 노른자 상권
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스트릿과 키세나 블러바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은 중국계가 장악하
고 있다.
최근에 중국인들을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플러싱 개발사업에도 한인들이 많이 배제되고 있다.
그동안 플러싱 공영주차장 개발계획도 한인들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지난 7월 최
종사업자 선정 이후에 한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적인 개발 반대운동을 벌이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러한 반대 시위와 함께 플러싱 개발계획의 정치적 맥락, 중국사
회의 현황과 특성, 보다 중장기적인 대응방안 및 한인사회의 미래에 대한 진지하고 포괄적인
논의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인 플러싱은 개발되고 변모해 나갈 것이다. 이제는 소극적인 방식의
대응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일구어 놓
은 우리 삶의 터전인 플러싱은 또 하나의 차이나타운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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