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류는 어디로 흐르는가

2006-02-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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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편집국 부국장)

2월3일자 한국일보 본국지 1면 중간 톱으로 ‘비와 눈물에 젖은 뉴욕’이란 제목하에 2일 메디
슨 스퀘어 가든에서 춤추며 열창하는 가수 비의 뉴욕 데뷔 사진과 맨하탄 프랭크 캠벨 장례식
장의 백남준씨 뷰잉 사진이 아래위로 실렸다.
‘한국이 낳은 비디오 아티스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의 조문의식과 아시아 스타로는 최초로 미
국 대형 무대에 선 비의 춤추는 사진을 동시에 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떠나는 자’, ‘오는 자’ 는 2일에는 첫 공연과 뷰잉 의식으로 3일에는 이틀째 마지막 공연
과 장례식으로, 이승과 저승으로 영원히 헤어졌다.
우리가 TV를 소유하기보다 끼니 걱정을 먼저 해야했던 시절에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미술
장르를 개척한 이의 죽음과 뮤직 비디오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할 정도로 모든 예술 장르,
특히 무대에 비디오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후세 연예인의 데뷔 무대가 같은 날 이뤄진 것을 보
며 미국 속의 한류를 본다.
그러나 과연 미 주류사회 속에 잉태된 한류는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이 물줄기를
어디로 잡아야 할 것인가.
일찌감치 한국땅을 떠나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백남준, 그는 생전에 한국땅에 묻히고 싶어
하더니 배추색 실크 한복 저고리에 피아노 건반무늬 스카프를 두른 수의로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백남준은 강익중과 제니퍼 방 등 후배작가와 2인전을 하며 ‘나는 구석진 자리에, 가장 좋은
자리는 그에게’, ‘나를 밟고 지나가도 좋다’며 흔쾌히 후배들의 밑거름이 될 것을 자청했었
다.
기마민족, 백팔번뇌, 호랑이는 살아있다, 비디어 부처 등의 작품뿐 아니라 한국무용, 판소리, 무
당 등 한국적 소재와 천지인 동양사상을 즐겨 다루며 한국인의 자긍심을 잊지 않은 그가 아스
토리아 소재 무빙 뮤지엄에 그의 이름을 붙인 비디오룸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미학과 음악사, 미술사, 언어 등 기본 실력을 탄탄히 갖추었고 폭넓은 교유관계도 상당했고 무
엇보다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파괴를 통한 재창조성의 예술철학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그가
세계 속에 한류의 이미지를 던져 주었다면 그것을 이어받아 도도한 흐름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은 후손들의 몫이다.
한국가수 비도 미 주류사회에 파고들자면 스타성, 가창력, 춤 말고도 독창적인 것이 있어야 한
다. 어설프게 흑인의 목소리와 몸짓을 흉내내지 말고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 한다.
요즘은 한국 영화, 드라마, 김치를 비롯한 한국음식, 패션, 스포츠, 온라인 게임 등 한류가 물밀
듯 미 주류시장을 공략해 온다.
그러나 칸느 영화제 대상인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1,000만 한국관객 동원의 강제규 감
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아무리 미국 시장에 개봉되면 무엇 할까. 파리만 날리다가 소
리 소문없이 막내리고 있다.
계속하여 관객을 붙잡아둘 수 있는 독창성, 미국에도 있는 것 말고 우리만의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 고유의 것을 잘 개발하고, 마케팅도 같이 가야한다. 한류의 흐름에 우리가 할 일도 있다.
요즘 대만출신 이안 감독의 ‘브로큰백 마운틴’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7개나 올라와 화제가 되
고 있다. 한국 영화감독도 오를 수 있다. 그러자면 아시안 무드를 조성해 주어야한다. 동성애를
다루었다고 멀리 할 것이 아니라 왜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나를 보아야 한다.
한국영화 뿐 아니라 대만인, 중국인, 일본인이 만든 영화를 열심히 봐주어야 한다. 이는 아시안
이 돈만 벌려고 하는 이민자 그룹이 아니라 영화도 보고 문화도 즐기는 동양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대만인이 아카데미 감독상, 중국인이 주연배우상을 타면 다음 기회는 장동건
과 김희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
올해 6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미 TV 시리즈물 작품상을 탄 <로스트>(Lost)의 두 주연배
우, 대니얼 김과 김윤진이 빨간 카페트를 밟고 시상식장에 들어가기까지 “어느 날 TV에서 아
니 한국말이 나오네 하고 보니 한국배우들이 나오잖아요. 그 길로 블럭 버스터 가서 로스트 시
리즈를 몽땅 빌려다 보았어요”하는 시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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