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칙이 깨지면 개병사(兵事) 된다

2006-02-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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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은행인)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조광조의 개혁정책 중에서도 문벌에만 치중하고 수려한
문장만으로 등락을 결정한 과거제를 무시하고 현량과(賢良課)를 설치해 왕의 면전에서 실용적
인 문제에 ‘대책(對策)’을 논증함으로써 인재를 등용한 것은 오랜 전통의 과거제도를 혁파한
진보적 인사정책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시콜콜 싸리울 터진데 개 주둥이 내밀듯 될 곳 안 될 곳 모조리 참견
하는 것을 보면 거꾸로 가는 한국정치의 진면목이 훤히 보인다.
잡다한 것은 제외하더라도 국보법 폐지, 교사들의 정치활동, 귀족 노조원들의 꽃놀이패전횡, 각
종 데모의 제한 철폐 등 실로 시공적 무한범위에 걸쳐 권고안이라는 당의를 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국보법 폐지나 특정 종교의 병역 대체복무 같은 것은 헌재나 대법원에
의해 이미 그 부당성이 확인 되었건만 치외법권적 독선과 오만으로 헌정질서마저 추석 대추나
무 흔들 듯 한다.
이 인권위원회란 것이 기성제도권과 달리 일견 조광조식 인사정책인 현량과를 거쳐 권도에 입
성한 것처럼 보이나 권력자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놓고 옛날 전제군주가 자기의 보
검을 하사하면서 하명하듯 “거역하는 자는 가차없이 베어라” 하는 특권측인데 기묘사화가 재
발 않는한 쉽게 간판을 내릴 것 같지 않아 집 위에 집, 법 위에 법 같아 세상사 헷갈린다.
김대중정권 시절 군부독재 하에서 받은 압박과 설움에 한풀이용 단체로서 사회 구석 음지의 원
과 한을 정화시키는 순기능도 없지 않았지만 노무현 시절엔 그것이 왜 필요한지 이유를 모르겠
으나 지금은 쥐를 잡지 않는 생선가게에 고양이가 아닌 호랑이가 되어 있다.
한풀이용이든 보은(報恩)용 위인설관(爲人設官)이든 주적을 코앞에 두고 국보법의 개성이 아닌
폐지는 법 이전에 천부인권생명의 보존 차원에서 강건너 불이 아니고 그 연장선상에서 신성한
국토방위의 완수를 위한 국민개병(皆兵) 원칙을 무시한 특정 종교에 대한 시혜(施惠)는 수백만
의 퇴역이나 현역 장병들에 대한 모독이요, 국가 안위에 치명적 위화감을 조장하는 악법이다.
창군 이래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그들의 꿈과 이상을 마음껏 펼쳐야 하는 나이, 20대의 황
금기에 병역 미필이라는 금단의 벽에 부딪쳐 얼마나 엄청난 당혹과 갈등을 겪었는가.
노정권의 실세 중의 실세가 방아쇠 당기는 손가락을 자른 것도, 희대의 사기꾼 김대업 같은 하
찮은 위인이 썩은 정권의 주구가 되어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진흙탕으로 추락시킨 경천동지할
사건들도 모두가 병역법 때문이었는데 특정 종교로 인해 특혜를 받는다면 헌법상의 국민개병의
원칙은 무엇이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종교의 유혹을 받겠느냔 말이다.
대통령이 만인지상의 권한을 가졌다 해도 대통령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래서 이
이제이(以夷制夷)란 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백성을 볼모로 투기를 할 수는 없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가 한국의 영토라면 이북 동포들도 엄연히 한국 국민인데
짐승만도 못한 생활과 말살당한 인권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고 김정일의 눈치만 보는 노무현
정권과 또 그 정권의 눈치만 보는 인권위원회의 존재가 가당키나 한 얘긴가.
‘소크라테스’가 독배 마시는 것을 보고 “이상적인 직접민주주의가 <리더십>을 갖추지 못할
경우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된다”고 플라톤이 말했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을 2,500여년 전에
예견한 것은 아니겠지만 “대통령은 앞서 나가는데 국민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같은 ‘코드’
의 어느 인사의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보안법과 병역법 등 우선 2개는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미국땅에 두 발을
얹어놓고 친정이 잘 돼야 시집살이가 편하다는 소시민적 바램 때문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본
국 얘기를 썼지만 솔직히 개운한 마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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