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방가르드 영결 행사

2006-02-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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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환(뉴저지)

아방가르드 예술은 보통사람들은 이해하기 아주 어려운 예술의 한 장르이다. 그래서 나는 백남
준씨 비디오 아트를 감상하거나 이해하려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문외한이다. 그런데 한국이
낳은 세계적 아방가르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또 그 영결식
이 맨하탄에서 거행된다는 것을 알고 그런 세계적 한국 예술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제쳐놓고 조문을 다녀왔다.
미국에서 한국인 장례식에 가면 거의 모든 조문객들이 까마귀 떼 같이 온통 검정색 정장을 하
는 것을 싫어하여 나는 보통 정장을 하지만 이번에는 백남준씨 아방가르드 예술에 조금이라도
어울리게 넥타이 없이 그냥 갈까 했었다. 그런데 아내가 정장과 넥타이를 꺼내주어 보통 정장
을 했다.
펜스테이션에서 기차를 내려 란 멋
있는 슬로건이 걸려있는 곳에서 구두를 닦고 지하철을 타고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Frank
Campbell Funeral Chapel 로 갔다.
그 곳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은 서양인들이 대부분이었고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미술 전공 청년
들 같았다. 서울에서 대통령이 조전을 보냈고 뉴욕총영사가 조문인사를 왔다. 경기도 용인에 건
설중인 백남준 미술박물관의 관장이 맨 마지막 조사를 낭독했고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서울에서
개인 자격으로 조문을 왔다. 재미한인사회 지도자들은 없는 것 같고 서울에서 온 듯한 사진기
자가 열심히 촬영을 했다.
이런 세계적 한국 예술가의 장례에는 일면식이 없더라도 이 근처에 사는 한국사람이라면 가급
적 조문하는 것이 좋지않나 생각되었다.
장례 안내서 겉장에는 백남준씨의 환한 미소짓는 큰 사진이 올려있고 그 순서에는 일본인 미망
인(구보다 시게코) 성명은 물론 천당이나 극락세계를 주장하는 종교인의 성명 하나 없이 7~8명
의 조사할 내빈(Speakers)들만 있었다. 또 미망인의 좌석도 맨 앞줄이 아니라 세번째 줄에 있는
좌석이었던 것도 좀 색달랐다.
그 내빈들은 대개 고인이 옆에 살아있는 것처럼 고인과의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화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순서 맨 나중에는 백남준씨가 백악관 만찬에 초대받아 갔었을 때 휠체어에서 일
어나며 그의 양복바지를 일부러 흘러내리게 하곤 ‘오늘 내가 왜 팬티(내의)를 입었지?’ 했다
는 이야기를 그의 조카가 해서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을 크게 웃겼다.
이제 장례행사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모든 조문객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 아트를 연출한다며
가위를 돌렸다. 그것으로 남성 조문객들의 넥타이를 잘라 고인의 관에 넣으라는 것이다. 나의
넥타이는 옆에 앉은 백인여성이 싹둑 잘라줬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잘려진 넥타이를 몽땅 백남
준씨 관에 바쳤는데 나는 그 잘려진 것만 그 관에 바치고 그 나머지는 그냥 집으로 매고 왔다.
앞으로 그 넥타이를 그 분의 1주기(2007년 2월 5일)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맬 생각이다. 그 영
결행사 후 리셉션에서 만난 예술가(Carl Solway, 신시내티, 오하이오주)는 백남준씨의 예술과
인간성에 대하여 끝없는 칭찬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런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전통과 관습을 무시한, 정말 백남준씨 다운 퍼포먼스가 있는 영결식을 나는 영결행사(Funeral
Event)라고 명명해 봤다.
본래 천재들의 사상은 그 당시의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보통사람들은 그
런 세기적 천재들을 기인(奇人)이라거나 아니면 정신이상자로 간주하는 수가 많았다.
Nietzsche, Spinoza, Rousseau, Van Gogh 또는 Paul Gauguin 등이 진가를 인정받는데 오랜 세
월이 걸렸던 걸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먼훗날 우리 후손들은 백남준씨를 한국이 낳은 자랑스런 세계
적 아방가르드 비디오 예술가(Avante-Garde Video Art)의 창시자이며 선구자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 뉴욕 근처에 사는 덕분에 백남준씨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
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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