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의 네비게이션

2006-02-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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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거기까지 가는 길은…’ ‘그건 걱정할 게 없지.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려던 사람이 머쓱해진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차에 네비게이션이 부착되
어 있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다. 네비게이션은 이만큼 신통한 재주가 있다. 가는 길을
지도로 알려주니까.
한국 내 지방을 달리는 관광버스가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네비게이션에 의지하고 있었다. 벌
써 3년 전 일이다. 전에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몇 차례 그 곳의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나누
더니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네비게이션은 길안내 하던 사람의 일을 대신하게 되었
다. 가끔 운전하는 사람이 차를 세우고 지도를 들여다보던 일을 하지 않게 되어서 그 시간도
단축되었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은 모든 차에 붙는 기본적인 장치는 아니다. 여기에 따르는 비용이 있게 마
련이어서 차주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장치가 없는 차에서는 종전대로 지도에 의지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휴대전화에 필요한 전화번호가 입력되지 않았다면, 기억력을 활용하거나 수
첩에 기입하는 방법이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우리들은 대부분의 경우 고전적인 방법과 근대
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 방면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자녀 교육에 초점을 맞춰
본다. 교육 네비게이션에도 눈에 보이는 기계가 있고, 그 대신 마음에 새겨두는 보이지 않는 지
도가 있다. 누구나 자녀 교육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 목표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 기회
가 있을 때마다 그 목표를 자녀에게 알려주면서 협력할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보
이지 않는 부모들의 네비게이션이다.
그러나 교육의 네비게이션은 목표가 어느 한 지점일 수 없다. 어떤 방향을 결정하는 일 조차
복잡한 부수 조건이 따른다. 그래도 목표로 하는 방향을 분명히 정하면 발걸음에 힘이 생기고,
강력한 실천력이 따른다. 그렇다고 목표가 너무 세분되면 생활의 폭이 좁아질까봐 염려되고, 또
마음의 유연성을 잃을까봐 조심스럽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녀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부모의 결정에 따라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고 싶어요. 나는 부모의 꿈을 이루기 위한 존재가 아니에요’라고 부르짖는
학생을 보면서 감동한다. 그렇다면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부모는 미성숙한 자녀들이 마음과
몸이 건강하게 자라서 사회의 좋은 일꾼이 되도록 격려하고 보살피는 보호자인 것이다. 말하자
면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라고 할 수 있다.
차에 부착된 네비게이션에는 목적지에 직행하는 길이 알기 쉽게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가는 길
이 몇 가지 있겠지만, 가장 조건이 좋은 길을 표시했을 줄 안다. 교육 네비게이션에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길이 소개되길 바란다. 꽃길·자갈밭길·개울옆길·험한 산길·오솔길·
모래밭길·숲속길… 어떤 길을 걷게 되든 자녀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 어느 길에나
특색이 있고 삶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도 중에 백(白)지도가 있다. 지도에 대륙·섬·나라 등의 윤곽만 그린 지도이다. 여기에 필요
한 것을 기입하면서 용도에 맞는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나날, 자녀와 부모는
백지도를 교육 지도로 그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사·탐방·여행·견학·면담·제작… 등
을 그려넣으며 실천하면 자녀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이와같이 완성된 기성의 지도를 참고로 하되, 자녀에 맞는 맞춤지도를 만드는 의미는 크다. 첫
째, 개성적이다. 둘째, 창조적이다. 셋째, 기쁨이 있다. 넷째, 미래지향적이다. 다섯째, 가족애를
느낀다 등 긍정적인 수확을 얻게 된다.
자녀 교육을 할 때 내 자신의 가치 판단 없이, 시류를 따르거나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는 일은
현명한 것이 아니다. 개성적인 내 자녀에게 기성복을 입히려는 안이한 생각이다. 내 자녀를 바
르게 이해한다면 취할 수 없는 태도이다. 그래서 백지도를 우리 가정의 교육지도로 바꾸려는
것이다.
교육 네비게이션은 눈에 보인다거나, 보이지 않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 자체가 존재하느
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즉 삶이나 교육 목표의 유무를 가리기 위한 것이며 거기에 도
달할 수 있는 지도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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