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공허한 언어의 잔치’

2006-01-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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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 끼여들 때 나는 실천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나는 언어만이 난무하는 세계에 질식해 있었다. 로고스라는 단어를 말씀으로 번역해 놓은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이 벌리는 종교행위를 언어의 잔치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는 사람들의 삶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삶과 유리된 언어는 참으로 공허했다. 그것은 언어일 뿐이었다. 말씀 속에 길이 있다고 했는데 그네들이 전하는 말속에는 말만이 있는 것 같았다.
기윤실 운동 가운데에서도 이른바 건강교회운동이라는 것에 가담하고 나서부터 나도 언어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시달렸다. 우선 우리에게는 건강교회 운동의 방향이 필요했고 그것을 지탱해주는 논리도 필요했고 그 논리를 펼칠 공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5년째 건강교회 포럼을 개최해왔고, 논문집도 하나 출판했고, 일간지에 이런 칼럼도 쓰고 있다. 불행하게도 모두 언어로 벌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논리에 정직하려고 애썼다. 말장난으로 사기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지난해에는 건강교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발표했는데, 이 때 가장 신경 쓴 것이 이 체크리스트까지도 언어의 잔치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이고 명명백백한 판단이 가능한 기준을 건강교회의 척도로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 때 이 체크리스트까지도 말 잘하는 교권주의자들이 농락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체크리스트에 “당신 교회는 기도를 열심히 합니까?” 하는 기준이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기도 잘 하지 않는 교회의 말 잘하는 목사님은, “우리 교회는 남 앞에서 기도하기보다는 골방에서 남 안보일 때 기도하는데 중점을 둡니다”라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리스트가 이런 허망한 대접을 받기를 원치 않았다.
이 리스트를 발표한 이후에 우리는 또 비판자들이 벌이는 언어의 유희에 시달려야 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어떤 목사님은 우리가 국세청이나 이민국의 시각에서 이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법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말했고 가짜 서류를 만들지 말자고 말했지 미국의 이민법이나 세법을 옹호해 본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어떤 비판자는 교회가 불법체류자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당한 말이다. 나도 불체자 성도들을 도울 마음으로 법정이나 변호사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면서 산다. 그러나 불체자 보호운동을 벌이는 것과 이민국에 가짜 서류를 보내도 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기윤실의 체크리스트를 비판하면서 슬쩍 불체자 보호운동을 말하는 언어의 사기술에 분노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시애틀에서 어떤 목사님이 영주권 사기로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언어 잔치를 벌리고 있을 때 세상은 이들의 부정직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님들에게 호소한다. 이제 교권주의자가 벌리는 언어의 유희에서 탈출하자고.. 그리고 구체적인 삶 앞에서 정직해지자고. 우리가 정직하지 않을 때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말씀마저도 세상은 공허하게 들을 것이라고,


박 문 규
(캘리포니아 인터내쇼날대학 학장)
(LA기윤실 실행위원. www.cemkl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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