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부시는 뭐하고 있나

2006-01-27 (금)
크게 작게
이기영(주필)

9.11테러를 자행한 알 카에다 테러조직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이 1년여만의 침묵을 깨고 지난주 “미국 본토에 대한 새로운 테러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음성 메시지를 발표했다.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이 메시지는 미국의 정보당국에 의해 빈 라덴의 육성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 9.11이후 후속테러가 없는 상태에서 빈 라덴의 존재를 한동안 잊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빈 라덴의 육성 메시지는 새로운 불안감을 일으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접경 산악지대에 은신하고 있는 빈 라덴의 행방에 대해서 그동안 별의별 소문이 떠돌아 다녔다. 당뇨병 등 중병을 앓고 있는 그가 피신생활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여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가 하면 그가 미군의 폭격으로 부상을 당하여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소문, 지난번 파키스탄 대지진때 동굴이 무너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 나오기 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죽든 상관없이 이대로 소리없이 사라져 버리고 테러 없이 조용히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 그가 또다시 테러 위협을 하고 있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미국정부는 빈 라덴의 육성 메시지에 크게 놀라지 않는 듯했다.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장 테러위협의 징후는 없다고 안심되는 말을 했고 빈 라덴의 평화협상제의도 일언지하에 거부 했다. 무언가 자신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고 일반 사람들은 저으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부시대통령의 발언에서 나타났다. 부시대통령은 내달 비밀 도청문제에대한 의회청문회를 앞두고 영장없는 비밀도청이 국가안보를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홍보하기위해 매릴랜드의 국가안보부 청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을 다시 공격하겠다는 빈 라덴의 말은 결코 장난이 아닌 진실이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비밀도청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부시대통령의 말은 백번 옳다고 할수있다. 빈 라덴은 참으로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는 9.11테러를 했고 반미테러를 계속 선동하고 있다. 그는 이슬람 테러집단의 신화적 존재이다. 그가 있는한 미국은 항상 테러의위협을 벗어날수 없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재중에 있으므로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이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테러의 중심인물인 빈 라덴을 잡기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
였다. 빈 라덴이 숨어있던 아프간을 공격하여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빈 라덴은 놓치고 말았다. 그를 잡기위해 특공대를 조직했고 그의 생포나 살해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런데도 빈 라덴을 잡지 못한 채 테러와의 전쟁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미국은 지금 이라크 전쟁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를 일으킨 조직이나 테러를 음모하는 조직을 소탕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먼저 잡아야 할 사람이 빈 라덴이다. 그 빈 라덴을 잡아야 하는 사람은 테러와의 전쟁에 앞장선 부시대통령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빈 라덴이 잡히지 않고 계속 위협적 존재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인들이 부시를 재선한 것은 이 텍사스 사나이가 서부시대에 악한들을 일망타진 하는 서부극의 주인공처럼 테러와의 전쟁에서 빈 라덴과 다른 테러조직을 일망타진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집권2기의 부시는 국내정치에서 거의 모두 죽을 쑤고있다. 경제는 말이 아니고 다른 것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거기에 각종 인사의 실책, 스캔들로 인해 대통령의 인기도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통령들이 왜 이 모양이냐는 의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부시에게 남은 기대가 있다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뭔가는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바램일 것이다. 그러므로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제대로 해야 한다. 테러의 핵심인물인 빈 라덴부터 잡아야 한다. 테러와 빈 라덴을 빌미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해가는 술수를 버리고 다른 것은 모두 엉망이더라도 텍사스 사나이답게 악당들을 일망타진만 한다면 대통령을 두번 잘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빈 라덴을 잡지 못하는 부시대통령은 이 시대의 미국인들이 잘 못 뽑은 대통령으로 낙인찍히고 말게 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