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으로 이어진 아동 학대

2006-01-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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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자 (의사)

새해 눈부신 아침 햇살이 비치던 날, 경악과 충격에 온 몸에 전율을 느끼는 톱 뉴스로 신문, 텔레비전 화면을 얼룩지게 한 닉스매리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일곱 살의 어린 소녀의 죽음이다.함께 살고 있는 계부가 아이를 의자에 밧줄로 묶어놓고 수없이 고문을 한 후 화장실로 끌고 가서 욕조의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구타하여 무의식에 빠져 숨지게 하였다.
11일 아침 뉴욕 브루클린 한 아파트에서 숨진 아이가 발견된 것이다. 계부로부터 늘 반복적으로 구타당한 흔적으로 눈두덩이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고 그 소녀는 무단결석을 자주 했다고 한다.

소녀는 고양이 음식이 든 캔으로 배고픔을 견디었고, 체중 미달로 세 살난 아이의 몸무게였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어머니가 속수무책으로 자기 딸을 학대하는 찬피동물 같이 잔인한 남편을 방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철저한 방관자, 그리고 공범자라는 것이다.뉴욕 데일리뉴스, 오피니언 란 ‘보이스 피플’에 실린 충격에 빠진 시민들의 목소리 중 한 사람의 짧은 몇 줄의 글을 소개한다.<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동서비스국(ACS)뿐만 아니라 모든 커뮤니티, 이웃, 친지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좀 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깝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모두 우리 아이들이고 우리는 모두 책임이 있다.>


나도 이 사람의 생각과 같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으로 이제와서 사람들의 분노에 찬 외침이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학교 선생, 이웃, 친지, 사회복지기관, 그 어느 누구, 단 한 사람도 말이다. 범죄인에게 어떤 가혹한 형벌이 주어진다 해도 이미 숨진 어린아이의 고통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존엄성과 가치관을 잃어가고 있는 그늘진 사회에서는 죄악은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새끼를 먹이고 기르고 보호하는 동물이나 곤충보다 못하다.2005년도 영화 프랑스 펭귄-위대한 모험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남극에서 펭귄의 생존과 번
식을 위해 펼쳐지는 감동적인 다큐멘타리이다. 남극의 여름이 끝나고 산란기가 시작되는 겨울, 펭귄들은 긴 행렬을 지어 빙하로 둘러싸인 거대한 평지로 이동한다. 암컷 펭귄은 알을 낳자마자 이를 수컷에게 맡기고 태어난 새끼의 먹이를 찾아서 차가운 바다속으로 뛰어들어 원정을 떠난다.

수컷들은 혹독한 강추위와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영하 80도의 강추위에서 자신의 체온으로 알을 품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60여일 동안 부화하기를 기다린다. 몇달 후 무서운 바다표범과 바닷 속의 얼음을 깨고 필사적으로 구한 음식물로 묵직해진 몸으로 돌아온 어미 펭귄이 새끼들을 먹여 키운다.펭귄 부부의 자식을 먹이고 키우기 위한 분담 역할은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펭귄의 집단 가족이 펼치는 치열한 생존과 번식을 위한 투쟁은 남극의 눈부신 얼음육지 위에서 울려퍼지는 관현악 소리처럼 장엄하게 들린다. 남극의 두꺼운 얼음을 녹일만한 뜨거운 부모의 자식 사랑이다. 우주의 자연생태의 단순한 종족번식 본능이라고 보기에는 그들의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처절한 헌신과 사랑이 경이롭고 눈물겹다.또한 닉스매리의 슬픈 죽음은 핸스 크리스천의 1846년 작품인 성냥파는 소녀의 슬픈 전설같은 동화를 생각나게 한다. 어린아이 때 읽은 동화는 어른이 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 해를 보내는 섣달 그믐 마지막 날,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소녀는 거리에서 팔던 성냥 한 개비씩을 꺼내 불을 붙이다가 꽁꽁 얼어붙어 숨을 거두고 하늘나라로 떠난다.새해 아침의 햇살 비치는 날, 손에 타버린 성냥 묶음을 손에 쥔 소녀는 차디 차게 식은 몸을 거리의 건물 벽에 기대인 채 창백한 뺨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동화 속 이야기 보다 더 비극적인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
에 소녀가 밧줄로 묶인채 계부에게 구타당하던 나무 의자가 비치는 장면은 무서운 악몽처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닉스매리라는 어린 소녀도 의자에 묶여있던 밧줄을 끊고 성냥 파는 소녀처럼 굶주림도 고통도
없는 아름다운 하늘나라로 날아갔을까? 융단처럼 부드러운 초록빛 잔디 위에서 나비처럼 춤을 추며 날아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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