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은 무한하다

2006-01-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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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권(동부제일교회 목사)

사랑하는 두 남녀가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해안을 빠져 바다 멀리로 나갔다. 노를 열심히 젓던 남자가 여자를 빤히 건너다 보면서 말했다. “저어, 자기 나를 사랑하지?” “아이 참, 나 자기를 사랑하고 있잖아” “그러면, 저어 자기 나 부탁 하나 들어줄래?” 남자가 진지한 얼굴
로 물었을 때 여자는 긴장했다. 무엇을 요구하기 위해 저렇게도 진지하고 심각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여자는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다시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 부탁 하나 들어줘” 하고 말했다. 남자가 요구하고 있는 것을 어슴프레 짐작하면서 여자는 퍽 난감했다. 만약 반항이라도 하다가 배가 뒤집히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와락 겁이 났다. 여자는 남자가 요
구하는 대로 응할 수 밖에 없다고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무엇이든 말해봐” 여자가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야? 정말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도 들어주겠어?” 다짐하듯 하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말해보라니까...” 나직하게 말했다. “저어, 참 말하기 어
려운데...” 남자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뭔데 그래?” 이제는 오히려 여자 쪽에서 채근했다. 이윽고 남자는 결심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저어, 자기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말이야, 이 노 젓는 것 교대 좀 해 줄래?”‘황당하다’는 말과 ‘당황하다’라는 말을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랑을 기대했던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 ‘황당하다’고 한다. 전연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을 때 ‘당황한다’고 한다. 황당하든 당황하든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에서의 사랑은 대개가 자기 본위요, 자기 유익을 위한 것이다.가령 남자가 여자에게 보낸 구애(求愛)의 편지에 “오오, 나의 태양이여, 나에게 사랑을 주세요. 아니면 죽음을 주세요”라고 썼다고 하자. 곰곰이 따져보면 이보다 더한 이기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여자를 공중에 붕 띄우는 “나의 태양이여”하는 말부터 감언이설에 불과하다. “나에
게 사랑을 주세요, 아니면 죽음을 주세요” 하는 말은 이기주의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것이다.

여자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자신을 위하여 여자의 사랑을 강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여자의 희생적인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고린도 교회는 교회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분쟁문제, 성적 윤리문제, 교리문제, 교인간의 소송문제, 결혼에 관한 문제, 방언 문제, 우상 제물 문제, 성찬식에 관한 문제, 부활에 대한 논란 등의 문제들로서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고린도 전서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책망과 권면을 한 다음, 교회가 사랑의 실천에 힘쓸 것을 말했다.사랑이 있는 곳에는 이런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으로 보여야 함을 가르친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것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사랑이 없으면 구제도 자기 만족을 위한, 결국 이기주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받을 것을 전연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무한한 것이다. 사랑은 얼마만큼 주어야 할지, 언제까지 주어야 할지, 주는 것에 제한이 없다. 주고 또 주고 무한히 주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지난 2일 웨스트버지니아 탄광 채굴장에서 12명의 광부들이 죽고 한 사람만이 생존하게 된 폭발사고가 있었다. 그들 광부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죽었으나 그들이 남긴 사랑은 영원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남긴 쪽지들의 짧은 몇 마디의 말 속에 죽어가면서도 가족들
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했다. 어린 자식이 둘이나 딸린 젊은 광부를 살리기 위해 자기들은 죽어가면서 생명같은 산소를 나누어 주었으리라고 확신하는 그 젊은 광부의 아버지의 말은 사랑은 영원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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