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살같은 세월

2006-01-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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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맨하탄 파라다이스 클리너)

시간은 참으로 빨라서 새 해를 맞이하고 벌써 한참이 지났다.
누군가 말하기를 세월은 나이의 숫자에 마일을 붙인 속도로 흘러간다고. 나이 50이면 50마일로, 60이면 60마일로 간다는 말이다.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라는 말도 있고, 일제 말기 선승인 학명선사는 어느 새해에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한다.<묵은 해니 새 해니 분별을 하지 말게/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보라고 저 하늘
이 달라졌는가?!/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살지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사람은 “시간이란 알 것 같기도 한데 막상 물으면 캄캄하다”고 그의 <
고백록>에 적고 있다. 우리들은 편리하게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서 지나간 과거, 지금의 현재, 그리고 닥쳐올 미래라고 구분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시간이란 언제나 지금 현재의 한 선상에서 끊임없이 과거로 밀어내고 미래를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되어진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우리들이 낮 12시, 밤 12시라고 말하는 물리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와 그리고 객관적인 무엇이 되어지는 시점인 ‘그 때’ 즉 ‘카이로스’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경험하였으리라 믿지만 좋은 사람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어 시간을 잊어버리면 몇 시간도 금방 지나버리고, 지겨운 일을 한다든지 고통의 시간은 ‘일각이 여삼추’ 같이 5분도 너무나 지겨운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그런 심리적인 시간도 있다.

대강 이런 시간의 관념들 속에서 우리들은 주어진 70~80년을 살다 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그리고 지난 해보다는 올해가 더욱 행복해지리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언제나 희망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된다.그러나 혹시 내일, 혹은 내년, 또는 노후에 잘 살기 위하여 언제나 ‘지금’뿐인 우리들의 이 귀중한 ‘현재’를 아무렇게나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사유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라”는 귀중한 말도 따지고 보면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귀중한 현재를 행복하게 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느 정신과전문의가 쓴 책에 확실하게 정신병에 걸리는 세가지 방법을 재미있게 다음과 같이 ‘패러디’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첫째는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며 항상 남을 의식할 것, 둘째는 과거를 늘 후회하고 미래는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로서 걱정할 것. 셋째, 오늘은 이럴까, 저럴까 그저 우유부단하게 자꾸만 미루어 나갈 것.

이렇게 하면 아마도 누구라도 소위 말하는 ‘노이로제’ 혹은 ‘신경증’ 또는 ‘성격장애자’가 간단히 되리라 믿는다. 그와 반대로 오히려 ‘건강한 정신’이 된다는 것도 쉽게 유추가 가능한 일이다. 우리들 자신을 스스로 살펴보면 대강은 생각들이 지금의 현재에 몰입하고 머물러 있지 않고 언제나 과거가 아니면 미래로 가려는 경향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하루는 힘들게 살더라도 나중에 이 가게를 팔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여행도 하고, 골프도 치고 삶을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벼르는 사람들이 실제로 주위에 많다. 또 나중에 실제로 그렇게 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늘 내일만 위해 살다가 이런 일, 저런 병으로 그러지도 못하고 사고나 병으로 입원하여 누워있는 사람을 찾아보면 어쩌면 똑같은 말들로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 한다. 우리들은 사실 어느 누구도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고 한 치 앞의 일도 모르며 사는 것이 우리들 인생인데 다들 내일도 반드시 눈을 뜨고 일어나서 건강히 잘 살 것이라고 믿는 착각 아닌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간은 언제나 ‘지금 여기’인데 사람들은 언제나 ‘저기 언젠가’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미루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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