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6년 서곡

2006-01-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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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업(필라델피아)

대포 소리가 오케스트라에서 맹활약을 하는 곡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가지각색의 성당 종소리가 요란하게 음악 속에서 퍼진다. 첫 부분은 약간 슬프고 조용한 분위기였다가 나중에는 경쾌하며 큰 무리가 행군을 하는 듯한 느낌 속에서 대포 쏘아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고 새 하늘이 열리는 듯한 환희의 종소리가 음악 전체를 휘감는 듯 하다.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그러하다. 나는 자주 이 곡을 들으며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그
역사의 배경을 어렴풋하게 알기에 이 곡을 감상하며 내 단조로운 일상에서도 불꽃 튀는 격양을 맛보곤 한다.

2006년 한 해가 시작됐다. 사 계절과 열 두달이 나에게 전개될 것이다. 물론 독자들도 모두 같은 세월을 채우며 이민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각자의 4막 12장으로 된 2006년이라는 오페라의 서곡 연주가 시작되었다.지난 해는 참으로 이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충격을 준 일들이 많았다. 자연의 재난, 동성연애를 합법화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하나 더 늘고, 온국민 아니 전세계의 생명공학계의 영웅으로 떠오르던 과학자가 하루아침에 그의 연구가 모두 거짓이며 사기한으로 곤두박
질하는 이 세대의 놀라움과 이로 인한 크나큰 상처를 국민들에게 남겼고 불치병 환자들의 치유의 희망이 처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세계적인 스타 기업인 한국의 어느 재벌의 딸이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했다가 즉시 자살로 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대대적인 뉴스였기에 기억되지만 우리 각자가 지내는 한 해에는 말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삶 속에 녹아있을 것이다.인간은 동물과는 다르게 희망을 갖고 새로운 계획을 꿈꾼다는 것이다. 본능의 세계와는 다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며 행복일 것이다. 이 땅에 처음으로 타향살이를 시작한 선조들은 본능과도 같은 끈질긴 생명력과 인간의 특유한 희망과 결단, 그리고 자신을 넘어선 궁극적인 믿음을 향한 투신으로 낯설고 물설은 이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맞이했던 새해는 어떠했을까!그로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이어지는 세월... 낙엽이 쌓여 거름이 되고 새 생명의 토양을 이루듯 우리들의 이민 생활에도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거치고 거쳐서 새로운 코리안 역사의 지평선이 펼쳐진다고 보면 하루 하루 다가오는 나의 나날들에 가슴이 설레인다.

전유럽을 폭풍과도 같이 휩쓸었던 나폴레옹이 불란서 국기를 불에 태우며 혹한에 떨며 쩔둑거리는 병사들과 함께 퇴각하는 행렬과, 총 한방 안 쏘고 멀찌감치서 승리를 거두는 그 지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차이코프스키는 이러한 그의 조국의 한 해를 1812년 서곡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길이 길이 인류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파멸의 위기에서도 새 삶의 희망을 가꾸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린 사람들에게 새 삶을 만드는 인간의 지혜
가 있음을 리더스 다이제스트지는 수없이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삶은 모아지는 것도, 쌓여지는 것도 아니며 그것은 내 몫으로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 하나 써나가는 나날이라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하루가 얼마나 우리에게 귀한 것임을 자각하게 한다.인간에게 주어지는 행복과 특권이라는 것이 그저 주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삶을 우리가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 그것을 응결시킬 것인가 하는 것을 숙제로 던지고 있다.

각자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살리고, 개성의 향기를 뿜으며 인간의 향기가 서려 타인에게 따뜻한 배려를 하며 삶이 요구하는 기다림을 갖고 이 한 해를 펼쳐보면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기다림은 우리들을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어느 상황에서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어느 날, 우리들이 만든 2006년 서곡, 그 격랑의 삶의 물결을 헤치고 일구어낸 한 해의 일들을
되돌아 보며 그 속에서 대포 소리와 수많은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날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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