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화적인 시위문화의 정착화

2006-01-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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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국(픽포스터 대표)

대한민국 경찰 최고의 총수인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취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경찰 총수직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놓고 물러섰다. 허 전청장은 퇴임사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목이 메어 퇴임사를 하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내며 자신의 청장 사임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30여년 경찰
생활의 마지막을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어 대한민국 경찰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가버리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어지러웠던 당시의 치안을 담당하고저 조직된 우리나라 경찰공무원들의 시발점은 말 그대로 수준 이하였었다. 가난을 면치 못하는 박봉에 시달리면서 허술한 장비에 난립 사회질서를 치안하고저 불철주야 국가에 헌신하였던 과정을 딛고 일어나 현재 15만
의 강성한 경찰력을 과시하고 있다. 경찰들은 육지와 바다에서 국가의 안전과 각종 치안질서는 물론 각종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국가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건국이래 공산주의자들의 요소요소 준동으로 인한 각종 테러집회와 극한에 달하는 노사분규로 말미암아 수많은 인명들이 피로 얼룩졌으며 각종 기간산업들이 마비되고 학원 내의 데모로 인
하여 학생들이 투옥되고 학원이 불타는 등 치안 부재를 이루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았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각종 시위문화는 항상 극에 달한 폭력시위가 공권력과 맞서 앞장을 서 왔었다. 노사분규 때마다 폭력이 준동하여 경찰력이 출동되었으며 심지어 학원 시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었다.현대중공업 노사분규와 건국대 학원소요사태 때도 그 앞에는 항상 붉은 기와 붉은 수건으로 얼
굴을 가리운 자들이 앞장서 방화와 폭력으로 피로 얼룩지는 살벌한 사태를 연출하였었다. 지나간 일화지만 사실상 그들 앞에 서있던 자들을 검거하고 보면 그 직장과 그 학원과는 무관한 자들이 끼어들어 난동을 부렸고 대부분이 공산주의자들이었다는 설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듯 하다.

1970년대 중반경 대한민국 각종 산업현장에는 도시산업선교회(일명 도산)라고 하는 불순단체가 위장 잠입하여 노사분규를 한답시고 산업현장을 불사르고 간부직원 또는 기업주를 린치하고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극단적인 테러분자들이 있었다.당시 어느 산업현장이건 이들 도산이 침투되면 하나의 기업이 망한다는 설이 파다했었다. 그들은 이렇게 대한민국의 각종 기간산업을 파괴하는데 목적을 가지고 암약하였었다. 이렇게 난폭
한 시위 때마다 경찰공무원들이 출동하여 그들과 맞서 그들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찰관들이 순직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벌건 대낮에 얼굴을 가리고 쇠파이프 또는 각종 흉기를 휘두르며 밀려드는 그 난동자들에게 오히려 밀려 공권력이 무너지는 경찰관들의 치욕적인 아픔을
누가 책임을 진다는 말인가?경찰공무원의 총수가 경찰청장이라면 서열로 올라가 행자부장관이 있으며 그 위로 국무총리가 있고 실질적인 최고통치자는 대통령이 된다. 어찌하여 이런 서열이 분명 존재하고 있으면서 어려움이 대두되면 윗선들은 굳건히 존재하고 그들의 수족들만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말인가.

데모하는 사람이나 경찰관들이나 서로가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무슨 원한이 있어 살의를 품고 서로를 죽이고저 데모를 한 것도 아니고 또 기를 막고저 하였던 것도 아니다. 사실상 데모를 벌이게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정치를 잘못하고 계속되는 실
정으로 말미암아 그 개선점을 요구하게 된 것이 아마도 그 원인의 초미가 아닌가 싶다.지금의 시위는 사실상 공산주의자들이 준동하던 시절의 데모와는 확실히 다르다.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욕구불만의 분출이 과격하게 나타나고 관습적으로 데모하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경찰관이 희생되었던, 데모대원이 희생되었던 그 최종적인 책임은 경찰청장이 아니고 그 윗선으로 올라가 정치를 잘못 유도한 통치자까지 비화되어 공동책임을 져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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