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불법체류자는 필요하다

2006-01-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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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대에 미국에 이주한 사람들은 주로 영국인들이었다. 당시는 유럽에서 인구부족 현상을 겪었고 각국이 국력을 경쟁하고 있던 시대였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영국 식민지인 아메리카로 이주하는 것을 억제하던 때였다. 그래서 광활한 식민지를 개척하는데 노
동력이 매우 부족했다. 그 타개책으로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린 노예 무역이 성행하게 되었다.

미국이 독립한 후 서부와 남부로 주가 늘어날 때마다 흑인 노예제도를 용인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를 이슈로 하여 노예주와 자유주로 갈렸다. 대농장주가 지배한 남부지역의 주는 노예주가 되었고 상공업 중심의 북부지역은 자유주가 되었다.노예주와 자유주의 대립은 1861년 링컨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남북전쟁을 촉발한다. 남북전쟁은 노예제에 반대한 인도주의적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경제적 실리가 근본 원인이
다. 남부는 대농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예제도가 필요했고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값싼 자유노동자의 공급을 위해 노예해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노예제도를 지지했던 민주당도 이런 이해관계 속에서 남부민주당은 노예 찬성, 북부민주당은 노예 반대로 분열하고 말았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공업화가 가속되어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때마침 이 때쯤에는 유럽의 인구가 급증했고 각국이 해외무역과 해외투자에 주력하던 때였으므로 이민을 장려했다. 그리하여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그 뒤를 이어 독일, 이태리, 남유
럽, 동유럽, 북유럽에서 이민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민 가운데 소수의 예외는 있었지만 맨주먹으로 새로운 인생의 꿈을 이루어 보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신세계’를 찾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미국사회의 하층민으로 편입되어 광부, 부두 노동자, 잡역부 등
궂은 일을 하면서 미국의 경제를 떠받쳤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스코틀랜드에서 부모를 따라 이민온 앤드류 카네기가 방직공장 직공과 전신사무소의 사환을 거쳐 강철왕이 된 것도 이 시대이다.

남북전쟁 이후 1차 세계대전 때까지 미국에 들어온 유럽인은 2,600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대부분 14세부터 45세까지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로 맨몸으로 부딪혀 일했으므로 미국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데 큰 몫을 했다. 경제학자 존 코몬즈는 이런 현상에 대해 ‘쓸모있는 노동력으
로 키운 곳은 그들의 모국이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막대한 이익을 본 곳은 미국”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1968년 개정이민법이 시행된 후에는 남미와 아시아 등 후진지역에서 미국이민 행렬이 이어졌다. 이 이민러시에 편승하여 불법이민자도 늘어났다. 현재 미국내에 1,000만명이 넘는 불법체류자가 있는데 정부는 불체자 단속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하원은 강력한 불체자
단속법안을 통과시켰고 공화당과 보수세력이 강한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은 불체자 옥죄기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미국에서 불체자로 인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거와 환경문제가 어지러워지고 범죄문제
도 어려워질 수 있다. 불체자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계층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 안정에 부담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따라서 안정된 사람들이 볼 때는 전체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불체자는 이민자들보다도 사회적으로 한 등급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민자 계층을 떠받치면서 미국경제의 최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모든 산업이 중국 등 후발국가의 저임금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이 때 불체자와 같은 최하부 구조가 무
너진다면 미국경제는 완전히 붕괴하는 사태가 오고 말 것이다. 최근 미국 상공회의소의 회장이 반이민법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불체자가 얼마나 필요한 지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불체자를 반이민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철저히 단속한다면 지금과 같은 미국의 산업구조는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고 수많은 사업체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미국정부나 보수주의자들이 불체자를 완전히 없애겠다고 한다면 이는 소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잡는다는 우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흑인노예를 잡아다가 일을 시키고 후발 이민자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노동이 오늘의 미국을 성장시켰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불체자가 없다면 고상한 생활을 하는 그들이 궂은 일, 험한 일, 더러운 일을 하겠는가를 묻고 싶다. 불체자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는 다른 대책으로 얼마든지 해소시킬 수 있다.지금 미국에서 불체자는 마치 대역죄인처럼 쫓기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불체자는 필요하다. 이들은 일반 이민자보다도 신분 상승의 기간이 더욱 길기 때문에 미국의 하층구조를 떠받치는 기간도 그만큼 길다. 미국이 불체자를 내쫓겠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미국은 불체자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더욱 활용하면서 기여도에 따라 신분을 양성화 해주는 묘수를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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