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형 난치병

2006-01-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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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한 바가지 물로 강을 다 채울 수는 없고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라도 바다를 다 채울 수는 없지만 한 바가지 물이나 흐르는 강물 한쪽을 깨끗하게 정화하려는 노력은 사람들의 몫이다. 아무리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참담한 노력에 의한 조형물이 삶이라고 하지만, 썩은 지반에 뿌리가 깊게 박혀 탈출 할 수는 없더라도 가쁜 숨을 고르면서 수면 위에 꽃을 피우는 연꽃을 보면 세상은 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공간이다.
몇 송이 꽃으로 화초밭을 가득 채워 화려하게 하거나 몇 개의 별로 하늘을 다 채워 밤하늘을 밝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한 그루의 꽃나무라도 심고 싶은 마음은 내가 사는 내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천심이고 어두운 밤에 별을 바라보는 마음은 우리가 지켜야 할 아름다운 질서가 하늘의 명목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치료약 이전에 예방약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는 한가한 사람에게 병은 더 많다. 병에는 낫는 병이 있고 낫지 않는 병이 있다. 낫지 않는 병을 소위 고질병이라고 하기도 하고 난치병이라고도 하는데 이 난치병이란 유전으로 대물림하기도 하고 멀쩡하다가도 신체의 한 부분이 돌연변이로 생기기도 하고, 환경이 더러워서 생기기도 한다.세상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고쳐야 할 병이 으례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형의 고질병, 아니 차라리 한국형 난치병이라고 말하고 싶은 부정, 비리, 사기, 감추기, 부풀리기, 변절하기, 거짓말 하기, 지나치기, 깔보기,이기심, 허위로 치적을 꾸려 과시하기 등은 한국사람이 사는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골치 아픈 병들이다.
의식의 병은 정신의 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값지게 꾸려나가고 싶어하고 화려하게 전시도 하고 싶어 한다. 화염이 절정에 오른 참숯이나 연기가 다 가신 장작불에 올려놓고 어서 어서 잘 익도록 튀겨내고 싶은 욕망도 있다.


그러나 삶은 빨리만 뛰어가는 단거리의 행로가 아니라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장거리 행로의
질서이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 사회의 장애가 되는 돌은 그 무게가 하도 무거워 치우지는 못하더라도 다듬어서라도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정직하지 못한 군단과 정직한 군단은 대립이 된다. 청 백의 군단과 비리의 군단은 대립이 된다.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작은 일에 부지런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된 장난끼 많은 유통상인과 대립이 된다.골이 깊어지는 자본주의 현대인간 정서의 무서운 진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상대가 상대를 째려보는 세상이 되었다. 낮은 바다의 자유가 그리운 맨하탄의 고층건물을 보라! 키 자랑을 하다가 지치면 무수한 창문에 매달리던 불빛은 대서양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자진하고 싶은 처절한 심정으로 해 저문 늦저녁 바다로 걸어간다. 작은 집 창문을 적시는 전등불이 허탈하게 화려한 네온싸인의 불빛보다 따스한 것은 하루 일을 무사히 끝낸 가족들의 건강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이 귀중한 작은 마음에 병이 드는 것은 지저분하고 더러워지는 사회환경 때문에 정신이 오염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어청도라는 섬이 있다. 이름 그대로 맑고 푸른 물고기가 모여 사는 섬이다. 학생시절에 어청도란 이름에 끌려 가 본 어청도, 물고기의 눈빛도 푸르게 보였고 등이며 비늘도 푸르게 보였다. 맑고 푸른 빛의 물 속을 푸른 빛으로 헤엄을 치고, 밤이 되면 푸른 이불을 덮고 푸른 꿈
을 안고 잠이 들 것이란 생각을 했다.그런 섬이 지금은 환경이 더러워져 생계를 위한 어부들이 누우런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뿐, 그 때의 푸른 물고기들은 푸른 어부들 앞에서 다 사라져 갔다. 병든 어청도, 왜 그렇게 되었을까? 통치권을 자랑하면서 자연을 훼손한 인간들, 재산 증대를 위하여 무자비하게 퓌둘렀던 남획, 자본주의가 뿌려대는 인간과 인간의 간격, 이런 것이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한국형 난치병을!
이 병을 고쳐내는 명약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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