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을 예약하다

2006-01-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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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여기 2006년을 위한 각종 예약권이 있습니다. 마음대로 선택하십시오’ ‘행운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행복 예약권은 있습니다’ ‘행운’과 ‘행복’이 다른가. 확실히 다르다. 행운은 좋은 운수, 행복한 운수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운수는 인간의 힘을 초월한 천운을
말한다. 반면 행복은 마음에 차지 않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어 기쁘고 넉넉한 푸근함이나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하지만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흔히 말하는 五福이라는 것이 있다. 유
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복인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행복의 조건과 표현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변질된 것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술 활동을 한다면 바람직한 창의력이 충분히 발휘된 작품을 만들었을 때 행복할 것이다. 과학자라면 새로운 학설이나 발견·발명을 하였을 때 행복할 것이다. 정치가라면 새로운 정책이 성공하였을 때, 사업가라면 기대한 성과를 거두었을 때, 체육가라면 신기록을 수립하였을 때,
탐험가라면 목적한 지역을 답사할 때, 교육자라면 교육 효과를 올렸을 때 행복감에 젖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행복도 하나의 창작임을 깨닫게 된다.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여실히 알려 준다. 본인의 창안과 노력으로 거두어들이는 수확물임을 알게 한다. 그래서 행운과 구별되며 행복을 향하여 출발하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다. 새 해는 새로운 행복을 추구하는
좋은 계절이다.예약의 중요함은 어떤가. 오페라의 시즌 티켓을 마련하면 일 년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운동경기나 좋은 공연물의 지정석 예매권을 준비하였다면 그 자체를 감상하는 몇 시간을 즐기
기에 앞서, 기다리는 기간 동안을 충분히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기간이 긴 것을 예약한 미래를 위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루 하루가 기쁠 수 밖에 없다.이런 뜻에서 새 해의 행복을 예약한다. 예약한다는 말은 설명할 것도 없이 어떤 것을 확보하기
위하여 미리 약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각자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 제각기 스스로 약속하는 것이 된다. 이런 마음가짐의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선 가는 방향이 확실하다. 주저함이 없이 행복을 향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그 발걸음은 대지에 닿아 있어서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있다. 믿음의 발걸음이 목적지에 도달할 확률이 높을 것을 예상한다.그렇다면 그 목적지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는 순전히 각자의 개성에 달렸다. 다만 유의할 점이 있다면 과욕을 내지 않는 것일 뿐이다. 만일 과욕을 내게 되면 실망의 고배를 마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 설정은 자신의 만족이나 기쁨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 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물건을 제작하능 일인가·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인가·좋은 친구를 사귀는 일인가·작품을 쓰는 일인가·주택을 옮기는 일인가, 아니면 개조하는 일인가·자녀 교육에 힘 쓰는 일인가·저축을 늘리는 일인가·여행을 하는 일인가 등등 생활에 밀접한 것이 좋겠다. 또한 이는 일생 계획의 한 단계인 단기 계획일수록 성취의 기쁨도 빨리 느낄 수 있다.

행선지가 결정되었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건강한 발걸음도 마련되었다. 이제 또 무엇이 필요한가. 맛있는 음식이 있고 수저가 있는데 무엇이 필요한가. 제일 중요한 실천력이 요구된다. 직접 수저를 들고 음식을 맛보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것 역시 자기 스스로 할 일이 아니겠는가. 말을 물가까지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그 물을 마시는 일은 말 스스로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소위 행복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될 수 없다. 보편적인 행복관이 있더라도, 내 자신의 행복관은 어디까지나 개성적이다. 내 자신에 알맞는 행복이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창작품일 수 밖에 없다. 새해맞이는 값있고, 자랑스러운 맞춤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출발점임을 인식하면서 2006년의 행복을 예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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