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감사 카드

2006-01-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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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항문대장외과 전문의)

올해도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수많은 thank-you card 와 greeting card 들이 서로 교환되며 훈훈한 마음을 나누었다. 한 해 동안 도움을 주어 감사하였던 분들, 민생고에 매달려 자주 연락 하지못하였던 일가친척들에게 간단한 문구로 감사의 마음을 그리고 소식을 전한 때였다. 물론 꼭 연말 연시만을 찾아 감사하고 안부를 전해서는 안되겠지만, 반짝이로 곱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카드나 가족 사진을 곁들인 근하신년 카드 등은 이 계절 나름대로 꽤 운치가 있다.

새 병원으로 일자리를 옮긴지 벌써 일년 반이 다되어 크고 작은 일들로 알게 된 많은 병원 관계자분들, 환자분들, 학생들, 동료들로부터 길고, 짧은 글귀들이 내 우편함에 모였다.대부분의 카드들은 성적에 만족한 의대생이거나 수술 결과에 흡족했던 환자들에게서 온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평소 웬만한 일에 절대 놀라지 않는 필자를 기언 질색하게 만든 카드 하나가 있었다. 7개월 전에 수술했었던 대장암말기 환자로 수술후 5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타계한 환자 이름으로 카드가 온 것이다. 봉투를 열어 그 이름을 다시 보니, 이름뒤에 Jr. 라고 써있음을 알게 됐다.


Mr. H 는 7개월 전 처음 만난 51세의 J자마이카인 이었다. Mr.H 는 흑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동양인의 모습이 느껴지는 어메리칸 인디언에 더 가까운 모습의 점잖고 조용한 사람이었다.5년 전 부인과 남매를 이끌고 이민 왔다던 그는 매일 새벽 브루클린 어떤 자마이카 제과점에서 빵을 굽고, 저녁에는 부인과 함께 맨하탄의 큰 호텔에서 청소를 하면서 의대를 지망하는 대학생 아들 자랑을 하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그가 처음 의사를 찾았을 때 이미 그는 3 개월간 변에 섞여 나오는 피를 무방비해 둔 상태였고, 결국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을 때는 대장 세척이 덜 되었다 하여 3 주 후 반복검사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부인과 자신이 세금을 내며 살기에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을 수 없었고 때문에 의사 보기를 꺼려하는 이 사람을 같은 이민자의 입장에서 남같이 느껴지지 않아 응급실을 통해 입원시켰다. 그리고 수술을 했을 때에는 이미 간과 방광으로 전이된 말기 대장암이었다.


수술 후 실밥도 풀고 항암치료도 준비해야 되는데 2개월이 되도록 연락이 두절 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어찌 이렇게도 무책임 할 수 있느냐, 아들을 위해서라도 약물치료를 받고 암과 싸워야 할 것 아니냐며 그의 아들 앞에서 언성을 높혔던 적도 있었다. 그 후 2 개월이 지나 중환자실에 입원한 그가 의식을 잃기 전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두 눈만 퀭하니 남은 그는 나를 반기며 내 의사선생님 이라며 자랑스럽게 친척들에게 소개시켰다. 그날 나는 그의 아들에게서 Mr. H 의 두달간 잠적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의 퇴원 직후 아내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었고 불과 수주내에 죽게 됐다는 사실을…

Mr. H 의 아들이 보내준 카드에는 “Thank you for all your help”라는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 글귀가 써 있었다. 불과 반년내에 부모를 모두 잃은 이 남매는, 모든 신이, 하늘이, 그리고 이 세상이 증오스러울 이 남매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부모님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God bless you and your family!”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의 건강이 갑자기, 그리고 새삼스레 감사하게 느껴진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많고, 일가친척을 찾아뵙는 여행이 많은 계절이다. 매사에 감사하며 모두가 즐거운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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