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프터 식스(턱시도)

2006-01-06 (금)
크게 작게
박치우(복식가)

사람들은 동서양 할 것 없이 예나 지금이나 삶의 터전이 마련되고 넉넉해지면 집 치장 그리고 옷치장을 하면서 소위 문화생활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을 여기 저기 여러 면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은 미개로부터 개화라는 과정없이 이미 극치에
달한 성숙한 영국이나 유럽 컨티넨탈 문화가 이식 된 것에 어떤 나라보다 흥미롭고 또 주의가 되는데, 미국은 문화가 없는 나라니, 미국인은 상사람이니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물끄러미 쳐다보인다.개척자들은 영국 그리고 유럽으로부터 앞다투어 범선에 얼마만의 식량 그리고 입을 것을 싣고
무작정 이 대륙에 발을 딛었지만 곧 그들은 거센 자연 그리고 이 대륙의 토인인 인디언의 저항으로 만신창이 되었었지만 이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백여년의 짧은 기간에 자기들의 의식주 문화를 이 황무지에 다시 심기 시작 한 것에 주의가 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지금의 맨하탄에 정착하면서 실내장식용 타일까지 본국에서 실어왔고, 영국사람들은 버지니아, 그리고 지금의 뉴잉글랜드 지방에 코로니얼을 짓고 본격적인 영국 본토를 재건하였던 사실을 사가들은 적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당시 영국 황실에서 파견된 시찰단
은 이미 본국은 변하고 있는 생활 문화를 개척자들은 영국의 전통 문화를 열을 올려 고수하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그 한 예를 우리가 지금 입는 야회복 턱시도(Tuxedo)가 그 때 상황을 뒷받침해 준다.
영국사회의 남성복 예복은 낮에 입는 것과 밤에 입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데, 모닝코트(Morning)는 낮에 입는 것이고 이브닝 드레스(Evening)는 밤에 입는 것이다. 또 이에 따르는 약식(略式)이 있는데 모닝의 약식은 디렉터 수트(Directer)가 있고, 이브닝은 디너재킷(Diner)이
있다. 이 디너재킷을 미국에서 턱시도라고 부른다.


뉴욕 업스테이트에, 동포들이 잘 가는 세븐 레이크를 가다보면 턱시도 파크를 지나게 되는데, 그곳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 컨추리 크럽을 만들고 모일 때마다 영국의 디너재킷을 입고 턱시도 클럽 자켓으로 정했던 것에 유래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각 나라에서 이민 온 소위 마이너리티들 그리고 그 후예들은 예복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예복은 낮에도 턱시도를 입으면 되는 것으로 아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보식가들은 턱시도는 저녁 6시 후에 입는 야회복이란 것을 못박기 위해 아예 애프터 식스(After six)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애프터 식스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애프터 식스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이민자들을 위한 서양문화라고 할까, 마치 가정의 전기 사용료 고지서와 같이 쉽게 해준 복식문화, 애프터 식스를 아직도 이해 못했는지, 지금 우리사회에 흔히 있는 낮에 하는 결혼식에도 턱시도를 예복으로 입는 것이 통례가 되어있다. 이것이 비단 우리 한국 이민 사회뿐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사람처럼 생긴 이민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우리도, 그들도, 그것이 바르지 않은 드레스 매너인 것을 알면서도, 모든 것이 대세(大勢)로 바뀌면 할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듯이, 알게 모르게 넘어 가는 것 같은데, 이제 이 세상 드레스 매너는 각자의 재량으로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르게 된 것 같다. 아마 그래서 미국은 문화가 없는 나라, 미국인은 상사람들 이라는 누명을, 그들도 이 땅의 이민자, 동격으로, 애꿎게 그들 까지도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